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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ug 01. 2021

좋아하고 보니 여름이었다

여름 덕후의 여름 찬가

작년 이맘 때,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두 명의 친구가 주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새, 나는 뙤약볕에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바닷가에 기어이 발을 담구고 돌아왔다. 근처 빈티지 샵에서 빈티지 원피스를 사입고 돌아온 내게 친구는 말했다. "넌 참 이태리 남부 재질이구나?" 내 눈엔 그 친구가 일본 삿포로 재질이어서 그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여행을 다니면 좋은 것 한 가지, 가 아니라 거의 전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선택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여행이라는 모먼트, 돈을 벌기 위해 강제된 일상이 아닌 돈을 쓰기 위해 널린 일탈의 자세로 살다보면 내가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가 더욱 극명해진다. 가령, 여행을 하다 알게 된 나란 사람은 씀씀이가 헤프다, 벌레에 무감하다. 카페에서 책 읽는 걸 은근 잘 못 한다. (백색소음에 약하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강박이 있다. (경주로 가는 KTX 안에서는 영화 '경주'를 보는 식이다) 친구와 말하는 것 만큼 말하지 않는 시간도 좋아한다, 바다를 무서워한다, 인스타 핫플은 꼭꼭 들른다 등등이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론 피서를 목적으로 대부분의 긴 여행은 여름에 가니까, 여행을 갔던 계절인 여름이 좋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작년에 책 '아무튼 여름'을 읽으며 더욱 알았다. 여행지에서 마시는 여름 맥주, 여름 특유의 흥성거림과 의외성 등등을 나는 모두 좋아한다는 것을. 그것이 모여 '여름'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작년의 오늘(2020.8.1) 알았다. 딱 1년이 흘러 다시 여름 세레나데를 쓰고 있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여름을 왜 좋아하는지를 최근의 짧은 여행에서 또 느꼈다. 더위에 나름 내성이 있는 나는 여름에 더위를 맞닥뜨리는 것을 좋아한다. 소싯적 청년들 기차 프리패스 '내일로'를 타고 다니며 국토를 종단/횡단하며 나는 여름을 직격으로 마주했다. 전국 방방곡곡의 어느 사찰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 티셔츠를 촉촉히 적시던 땀방울을 기억하는데 절대 몸에 열이 없는 나의 특성상 그것은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가랑비를 맞으면 시원했고 비가 안 와도 약수 한 잔 마시면 견딜만 했다. 그리고 대웅전 지붕 아래서 올라온 길을 아득히 돌아보면 오던 길의 수고는 벌써 날아가고 없었다.


섭씨 36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강행한, 그저께의 짧은 여행은 그렇게 부지런히 여름과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흙길을 밟아 만난 두물머리의 장쾌함, 싱그러운 연잎과 연꽃 잎사귀, 나무를 집어 삼킨 능소화를 보는 유채색 기쁨. 몸에 나는 땀이 그것들의 현재성을 알알이 알려줬다.


나무를 점령한 능소화와


여름 그 자체인 연잎


겨울에 먹는 냉면이 더 맛있어야 미식가라지만 그렇게 고급스런 미각을 갖추지 못한 혀에는 여름 냉면도 최고였다. 이날 맛본 양평의 옥천냉면은 면발에 메밀과 고구마 전분이 함께 섞여서 쫄면 같이 탄력이 있었다.(굵기도 굵다) 이게 여름이지 싶게 저항하는 면발들을 힘있게 어금니로 내려 눌러야 하는 맛이었다. 육수도 육중한 무게감이 있는데 달달함은 덜해서 벌컥벌컥 잘 넘어갔다. 속이 꽉 찬 완자도 좋고... (수육은 비계가 덜해서 다소 퍽퍽했지만)



그리고 산미 가득한 아아에 통창의 카페. 밖은 더운데 나는 시원하다는 궁극의 즐거움. 눈 뜨기 힘들만치 내리쬐는 햇볕. 눈을 못 뜨겠다는 엄살도 좋음...


멍 중의 최고는 물멍이오


그리고 저녁에 과일과 치즈만으로 구성된 여름 주안상을 받고 나는 뻗어버렸다. (집에 와선 정말로 뻗어 버렸다.) 술맛이 과도해 벌컥벌컥 탓이다. 차갑게 칠링한 화이트 와인은 산뜻했고 레몬즙이 들어간 샐러드와 시너지를 냈다. 자정에 택시 타고 집에 돌아와보니 손에는 단호박, 복숭아가 그려진 책, 무알콜 하이네켄이 가득 들려 있어서 정말 '여름이었다' 했다...


이 모든 게 추위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 외투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리는 겨울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간지러운 봄이나 스산해지는 가을에도 불가하지. 오로지 여름, 여름, 여름 덕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음쓰에 꼬인 초파리와 겨드랑이에 난 땀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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