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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Feb 05. 2023

프롤로그: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그래,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그래,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받은 피드백 중 가장 진기한(?) 반응이다. 발화자는 업계 동료의 상사. 좁디 좁은 언론계에서 친구는 평소에 퇴사 타령이 심한 내 얘기를 자기 부장에게 자주 전했나 보았다. 드디어 퇴사했다고 전한 순간, 부장은 단번에 저렇게 물었다 한다. 남편이라고요? 저 그런 거 없는데요.


 돈 잘 버는 남편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직 아닌 퇴직을 감행할 수 있었겠느냐는 게… 내 짧은 머리로 미루어 본 그 부장님의 사고 회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남편이 있었다면, 퇴사 못했을 거예요. 왜냐면… 전 그런 사람이거든요.


 2022년 12월 8일. 나는 회사 사옥을 오르내리며 꽤나 부산스럽게 퇴사의 지평선을 넘었다. 업무용‧개인 사무용 구분 없이 썼던 회사 노트북을 반납했고, 수십명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해가며 작별을 고했다. 그게 내가 지난 9년 간 미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했던 회사와 사람들, 나의 시간을 향한 예의였다.


사람들은 물었다. “얼루 가?”

한치의 오차 없이 각본대로 답했다. “어디 안 가고요. 집에서 놀 겁니다.”

여러 반응이 날아왔다.     


“갈 데 없으면 돌아와.” (고위직 어르신)

“이 엄동설한에… 날이라도 풀리거든 가.” (부장급 이상)

“참 용감하다야. 부러워…” (차장급)

“어디 좋은데 있어? 나도 데꼬 가” (연차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선배)

“선배…” (후배…)     


 어떤 선배는 카톡으로 이런 글귀가 적힌 이미지를 보내왔다. ‘The first step towards getting somewhere is to decide that you are not going to stay where you are. - John Pierpont Morgan.’(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당신이 선 자리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존 피어폰트 모건.) 선배는 말했다. “너의 결심은 JP모건급이야. 찡긋.”


 서른 다섯, 10년차 일간지 기자. 1인 2묘 가구의 가장인 내가 회사를 그만 두게 된 것은 멈춰서기 위해서다. 목표 집약적, 권력 지향형 인간으로 살았던 내 인생의 첫 번째 일시정지를 위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중 하나를 세운 J.P. Morgan급 행보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S.G. Lee급 행보는 된다. 그게 내 이름이니까.


2022년 12월 8일의 나. 작별 인사로 회사를 한바탕 돌고 난 직후의 얼굴이다. 전에 없는 미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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