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다녀오면 수업 빠져도 출석으로 인정해 주시던 교수님
2010년,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아무것도 모르던 병아리 새내기 시절, 한 교수님은 파격적인 제안으로 강의를 열었다.
강의소개를 하시면서 "전시회는 무조건 많이 가야 돼. 전시회 가면 출석 한 번 인정해 줄게. 갔다 와서 사진이나 팸플릿, 표를 가지고 오세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속으로 '우와, 이게 바로 대학생활인가!!!'하고 매우 새롭고 흥미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전시회를 생각보다 많이 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전시회가 아주 비싸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알바를 했을 때, 최저시급이 4,11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주말에 보통 5시간 정도 알바를 했었으니, 전시회를 가려면 거의 하루에 일한 돈을 다 써야 했던 것이다.
따로 용돈도 받지 않고 주말아르바이트비를 용돈으로 생활했던 나에게 전시회 한 번 가는 것은 매우 큰 지출이었다.
그래서 아주 큰맘 먹고 전시를 가거나 친구들과 수업을 빠질 생각으로 코엑스에서 하는 무료 박람회 같은 것만 종종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 방문한 전시회에서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출 비용이 크다고 생각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얼리버드 티켓도 그렇고 무료전시도 13년 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물론 그때도 있었지만 내가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아니면 정보가 지금 훨씬 전달이 잘 되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최근 한남동 길을 가다가 무료전시를 발견했다. 강렬한 분홍색 색감에 이끌려서 전시를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처음으로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고, 작품 문의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감명 깊게 봤던 작품은 비매 작품이라 소장할 수 없었지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작품을 보며 정말 기분 좋은 자극과 기분 전환이 되는 느낌이 받았다. 원래도 전시회를 종종 가긴 했지만 이런 느낌을 받은 이 전시 이후로 전시회를 더 열심히 찾게 되었다.
또,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의 표지를 그린 작가님인걸 알고 나서 한번 더 놀라고 발걸음에 따라 들어갔던 우연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저번달에만 3개의 전시를 갔는데 모든 전시가 다 나에게 쉼을 주었다.
또 이렇게 나에게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 게다가 사물을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도 생긴 게 분명하다.
13년 전 교수님은 성인이 갓 된 학생들에게 이 경험을 알려주고자 하셨던 걸까?
그때 알지 못했던 게 너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거라면 앞으로의 여가시간에는 내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과 느끼는 것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들이 최소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년 이상을 작품을 만들었을 텐데, 그 경험을 우리는 맘만 먹으면 나눌 수 있다니.. 이렇게 생각하니 전시회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회가 될 때 더 열심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전시회를 다녀와서 느끼는 것을 기록해 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시 추천도 하며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것까지 생각하면 전시회는 정말 단순하게 '입장료'의 값어치를 하는 게 아니다.
13년 전에는 전시회 값이 비싸서 자주 못 갔지만 요즘에는 시간만 허락된다면 가고 싶은 전시회에 갈 수 있고, 또 맘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굿즈도 한 두 개 살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물론 집에 오면 서랍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전시회의 굿즈로 잊히기도 하지만.. 또 환경에 관심이 많은 나는 손에 집었던 것을 줄이고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최대 1개정도만 구매하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누가 말해줘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몰랐을 이 전시회의 놀라움을 생각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고자 한다.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진다면 또는 주말에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다가오는 여가시간에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