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전시품 가구 구매기
"결혼하면 로망 같은 것 있어?"
"없었는데, 사촌형 집에 서재방이 있더라고. 부부가 같이 앉아서 할 일 한다는데 뭔가 좋아 보였어!"
"그으래~?"
가구 욕심, 가구 취향이라고는 1도 없던 우리 부부에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생기기만 했었다.
사실 신혼여행 기간에 이사를 하게 되었고, 가구를 채울 생각은 뒷전이었던 우리.
'일단 침대는 있으니 잠은 잘 수 있겠다'까지만 생각했지 아직 신혼집을 채울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선택의 연속이었던 결혼준비로 이미 지친 상태였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혼여행을 떠났으니 가구고 뭐고 일단은 선택에서 해방됨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2일 뒤, 지금 정리 안 하면 정리 계속 못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이끌려 가구를 반강제(?)로 보러 가게 되었다. 사촌 언니의 결혼식 준비를 옆에서 도왔던 우리 엄마는 특정 브랜드를 말하며 거기가 최고라고 일단 가보자고 했다. 심지어 엄마가 사주시겠다고...!!!!!!!! 당장 엄마를 따라 집을 나섰다.
(결혼한 지 2주가 갓 된 우리는 아직도 부모님 없으면 알아서 하는 게 없는 상태였다^_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엄마의 최애브랜드를 찾아갔다. '전시품 ~80% 할인판매' 현수막이 우리를 반겨줬다.
사실 저 '~'에 많이 속았던 나는 싸봐야 얼마나 싸겠어.. 마인드로 들어갔다.
항상 내가 마음에 드는 건 '~80%'여도 '10%' 아니면 '20%' 이상 할인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곧 없어지는 가게여서 그런지 매장 직원은 손님이 들어오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좋다. '맘 편하게 구경할 수 있겠다.' 싶었다. 판매완료 스티커가 붙어있는 여러 가구 중에 우리 눈에 쏙 들어온 물건이 있었다.
바로 남편이 바랬던 책상 2개가 붙어있는 전시품이다. 전시품은 전시되어 있는 세트 그대로를 가져가야 한다고 한다. 책상 2개+수납장+문구를 보관할 수 있는 소품들이 포함되어 있는 전시품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큰 사이즈이긴 했지만 남편이 찾던 바로 그것이다. 남편은 책상에서 각자 할 일을 하다가 피곤함이 몰려오면 뒤를 돌아 "커피 한잔 할까~?"하고, 테라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걸 해보고 싶다고 했다.
줄자로 사이즈를 측정해 보니, '어머 우리 집에 딱 적당히 들어가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전시품은 처음 구매해 보지만 많이 더럽지도 않았고 먼지가 조금 있어도 닦는 거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 가격을 문의했다.
세상에나... 책상 2개와 책상밑의 수납장들, 그리고 모니터 선반등 모든 것을 포함해도 책상 1개 값이 되지 않았다. '어머 이건 사야 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의 카드는 이미 직원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가구를 보러 다닐 생각에 나갈 때부터 피곤했던 우리에게 처음 간 곳에서 이렇게 딱! 필요한 물건을 좋은 가격에 만날 줄이야!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역시 부모님 말 들어서 나쁜 것은 정말로 하나도 없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고 나서 10일 뒤에 가구를 배송받기로 했다.
전시상품은 전시되어 있던 그 상태 그대로 온다더니 멀티탭까지 그대로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다. 우리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루에 40분씩은 매일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자고 다짐했지만, 11월 7일에 배송된 이후로 딱 한번 책상에 앉았다. 직장인이 퇴근 후 책상에 앉는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퇴근 후 공부하시는 직장인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 수능 날 "우리 수능 문제 풀어볼까?" 하고선 처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수리영역을 30분만 풀었지만 수능 본 지 10년 이상 된 우리 부부의 머릿속에 수리영역을 풀기 위해 필요한 공식들은 다 사라 버렸고, 각 19점 24점을 기록했다.(물론 수리영역은 100분이 주어지지만, 아마 100분이 주어져도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신혼부부에게 점수가 무슨 상관이랴. 우리가 고른 책상에 앉아서 무언갈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각자의 목표를 하나씩 세웠으니, 이제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서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그런 부부로 지내고 싶다. 우리 둘만의 취향을 하나둘씩 더 찾아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이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