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그 시절...

by 서서희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그 시절...


글 서서희


적갈색흰죽지를 찍으러 마포대교 근처에 가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마포나루터가 있었고, 그곳에 내가 다녔다는(?) 신석초등학교가 있었다. 마포나루의 옛 이름은 삼개나루로 용호, 마호, 서호라고 불리다가 마포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루터이니 뱃사공이 많았을 것이라 짐작되고 외할아버지가 도포에 갓(큰 갓이 아니라 작은 갓?)을 쓰셨던 것도 기억났다. 아마 외할아버지도 뱃사공이었겠다고 짐작을 해 본다.

외할아버지는 중인(?)이었음에도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제사상을 받아야 한다고(?) 딸을 여덟이나 낳으신 분이다. 돌아가신 엄마의 말에 의하면 외할머니는 딸 일곱을 낳고 거의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시 새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았지만 또 딸이라고... 그 이모가 나랑 동갑이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 어른들의 생각은 이해하겠으나 딸이 그만큼 많으면 포기하실 만도 한데 그러지 않으셨다는 점, 대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도 않았기에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으리라는 점 등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아들을 보고자 지으신 딸의 이름이 둘째는 진남, 참 진 사내 남. 셋째는 오로지 윤 사내 남이다. 여자 이름이 진남이고, 윤남이다. 여덟을 낳고도 아들을 보지 못해 친척 중에서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고도... 하지만 양자로 들인 아들이 제사를 모시지 않고, 딸은 제사를 모셔선 안 된다는 불문율에 의거 제삿밥을 드시지 못했다고... 나중에 절에 모셨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

마포가 나루터였다는 것은 알았는데, 안내판에 토정 이지함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조선 중기 서경덕의 제자이며 율곡 이이 등과 교유하였다는 그는 관직에 나아갔다가 사임하고 마포에 토굴을 짓고 거주하였다고... 이지함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질문에 이이가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마포와 토정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좋았다. 내가 자랐던 곳이 가난한 동네였지만 그래도 뭔가 뿌듯함이 생겼다.


서강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엄마를 따라 삼척 진주초등학교를 1년 다녔고, 다시 서울로 와서 졸업한 학교가 신석초등학교라는데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는 게 없다. 삼척에서는 서울에서 온 평범하지 않은 아이였는데, 신석초등학교에서는 그냥 그런 평범한 아이였나 보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도 떨어졌기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셨는지 집에는 거의 나 혼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우리가 살던 집주인 아들이 내 또래였나 보다. 같이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있으니 꽤 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여자이기에 웃지 못할 상황이 있었다. 같은 화장실을 써야 하는 상황(?). 거기서 발생하는 일들이 있었다.(말하기에는 좀 창피한 이야기들?)

지금 가 본 신석초등학교는 학교 안에 수영장도 있는 제법 큰 학교로 변해 있었다. 희미한 기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고, 굳게 닫힌 문이 지금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있게 일조한 장소일 것이라 생각하며 돌아왔다.

신석초등학교를 본 것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가난했던 내 유년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내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기에 아파하지 않고 돌아볼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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