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 망우리 역사문화공원과 4.19 묘지를 다녀오다

by 서서희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 망우리 역사문화공원과 4.19 묘지를 다녀오다


글 서서희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을 다녀왔다. 한번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다가 시간을 내게 되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로만 가는 구간을 선택했더니 양원역에서 1km 이상을 걷게 되었다. 초반에 너무 지쳐서 다음에 간다면 버스로 환승하고 조금 덜 걷는 방법을 택해야겠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역사문화코스로 2.7km, 1시간 30분이라고 해서 너무 만만하게 봤다. 하지만 몇 개의 묘소를 찾아 오르내리다 보니 결코 쉽지 않은 구간이었다.

일단 역사문화코스를 진행하기 위해 양원역에서 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가니 바로 망우리공원웰컴센터가 나왔다. 첫 번째 코스인 13도 창의군탑을 찾아 30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했다. 13도 창의군탑은 구한말 국권회복을 위해 모인 의병이 망우리 일대에서 펼친 서울 진공 작전을 기념하는 탑이다. 다시 계단을 올라 망우리공원웰컴센터를 지나 박인환 묘소로 갔다.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 태생으로 양구 세달살이를 할 때 인제 기념관에 간 적이 있는데 망우리에 묘소가 있는 게 좀 당황스러웠다.

이중섭 묘소에 갔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어렵게 살다 가신 분이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 빛을 발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분들의 묘소가 여기 이렇게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왜 망우리일까? 그 당시 서울에는 묘지가 따로 없어서일 것 같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 묻힌 역사적 인물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

묘소를 찾아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반복하니 짧은 거리지만 힘이 들었다. 과거에는 망우리 공동묘지라고 해서 인적이 드문 곳이었을 텐데 이제는 관광지로 잘 꾸며져 있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나는 길에 소설가 최학송과 계용묵 묘소를 지나게 되었다. 두 사람에 대한 너무나 다른 사후 평가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백치 아다다>로 유명한 계용묵 묘소는 소홀한 반면 <탈출기>로 유명한 최학송 묘소는 잘 꾸며져 있고 문학비까지 세워져 있으며 돌아가신 날인 7월 9일을 전후해 이곳을 찾는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인물에 대해 찾아보니 계용묵은 초기 '현실주의적‧경향파적인 작품세계를 보이기도 했으나, 1935년 「백치 아다다」를 발표한 이후 인생파적‧예술파적 작품세계로 옮아간다. 그리하여 예술의 미적 창조 및 자율성을 강조하는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다.(네이버 지식백과)' 최학송은 '고난의 체험이 풍부했던 관계로 극빈자의 고투(苦鬪)와 자연발생적인 반항을 주제(主題)로 한 많은 작품을 써냈다.(네이버 지식백과)' 고 한다. 최학송은 살아 생전에는 문단에서 백안시되어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으나 사후에 그의 활동이 재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 묘소를 지난 뒤에는 힘이 들어 다른 코스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우림시장 쪽으로 내려왔다. 다른 중요 인물들의 묘소(방정환, 오세창, 안창호, 한용운, 지석영, 차중락 등)를 찾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수유리 4.19 묘지를 가보기로 했다. 망우리와 수유리는 한 번은 꼭 찾고 싶었던 곳이었다.

신설동역에서 우이신설선을 타고 4.19 묘지역에 내렸다. 역에서 내려 4.19 묘지를 찾아야 하는데 4.19 묘지 전망대를 가게 되어 한참을 더 돌았다. 그래도 전망대를 가다가 몽양 여운형 묘소가 있다고 하여 찾아보았다. 여운형 선생은 남한강 자전거길을 가다 보면 양수역 지나 신원리라는 마을 태생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 수유리에 묘소가 있는 것이 좀 의외였다. 한참을 헤매다 찾았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꽤 넓은 곳이었는데 주택가 한가운데 아무런 팻말이나 설명도 없이 문만 잠겨있어 당황스러웠다. 지나가던 주민께 물으니 당신도 50년 만에 여기에 왔는데 너무 변했다면서 여운형의 사상성(좌파?)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운형은 사람에 따라 평가가 엇갈려서 무어라 답하기가 어려웠다.

4.19 묘지에 들르고 기념관(4.19 혁명기념관이라 명명한 곳)을 가려고 했는데 4시 반까지라 볼 수 없었다. 4.19에 대해서는 역시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래도 혁명이라 명명한 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오늘 망우리와 수유리를 다녀오면서 이만 오천보 정도를 걸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끝낸 것 같아 마음은 개운했다.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생전의 활동이 중요한지, 사후 평가가 중요한지(내가 그리 중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말인가?) 등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역사문화코스
13도 창의군탑
망우리공원 웰컴센터는 아직 개관 전인 듯...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묻힌 역사적 인물 소개
양구 세달살이 중 블로그에 썼던 내용
박인환 소개
이중섭 소개
최학송 문학비
계용묵 묘소엔 설명하는 내용도 없었다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충익공 신경진 신도비
여운형 선생 묘소는 문이 잠겨있다
북한산 둘레길에서 내려다본 4.19 묘지
4.19 묘지를 정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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