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미술관(舊 벨기에영사관)에서...

- 미술관 순례 2 : <청금루 주인 성찬경>

by 서서희

남서울미술관(舊 벨기에영사관)에서...

- 미술관 순례 2 : <청금루 주인 성찬경>


글, 사진 서서희


남서울미술관은 벨기에영사관을 거의 그대로 이전하여 2004년 재탄생된 곳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청금루 주인 성찬경>을 보러 갔다. 성찬경(1930~2013)은 시인이면서 행위예술가, 조형예술가라 말할 수 있는 분이다.

이 전시회는 크게 다섯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1) 청금루 : 작가의 서재

- 여기에서는 작가의 시론 중 '밀핵(密核)시', '일자(一字)시', '물권', '생태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밀핵'이란 시 속에 들어 있는 작가의 심상의 구성인자들에 붙인 이름, 즉 이미지의 원형질을 의미한다. 밀핵시는 한 편의 시에 가능한 한 최대의 '의미의 밀도'를 넣는 것이다. 이런 사상적 바탕하에 2자 1행 22행인 시 '사랑'과 1자 1행 119행의 시 '해' 등이 탄생했다.

'물권'이란 성찬경이 정의하길 '물질도 스스로 영묘한 얼개와 내용을 인간처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더 나아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하였다. <파편, 순수 물질, 너는 너다>라는 시 속에서 유리병이 깨어져 유리 파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독립된 물질로 생명을 부여받는다고 역설하고 있다.

2) 야오씨와의 대화 : 말+예술

- '말예술'은 성찬경이 일반적인 시 낭송회 또는 시 낭독회에서 벗어나 일종의 문학적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종합적인 예술 활동이다. 성찬경의 말예술 한마당은 5회까지 진행되었는데, 1회 '가려움과 문학', 2회 포프라좌의 별들, 3회 야오씨와의 대화, 4회 굴착기와 파편, 5회 다이아몬드의 별 등이다. 전시회에는 5회 동안 진행된 말예술 한마당의 내용을 일부분 동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성찬경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3) 유쾌하게 빌었다 : 물질과 물권

- 사물에도 물권이 있다고 주장한 성찬경은 자신의 집을 버려진 잡동사니 오브제들을 위한 전시장으로 꾸미고 '응암동 물질고아원'이라 명명하였다. 버려진 나사를 줍고 모아 닦고 손질해서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고, 자신의 모습을 만들었다. 물질에 '존재'를 부여해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되도록 한 것이다. 피아노 액션으로 만든 <제목 미상>은 피아노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나, 본래 가로로 눕혀져 있던 피아노 액션을 하늘을 향해 곧게 세워 하나의 기념비처럼 조형미를 갖춘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4) 오오로라 : 세상의 운율

- 성찬경은 밀핵시에 어울리는 운율법으로 '우주율'이라는 운율의 틀을 제시하였는데, 우주율이란 산문이 갖는 정밀성과 운문이 갖는 장중함을 하나로 조화시키려는 방법이다. 초콜릿 포장지나 종이 상자에 자신만의 우주율을 담아 보여주고 있다.

5) 답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 : 성찬경의 송(頌)

- 성찬경은 문학에 그치지 않고 음악, 회화, 조각 등 장르를 불문한다. 작가가 흠모했던 예술가들(추사 김정희, 슈베르트, 칸딘스키, 폴 세잔,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등)을 칭송하고 오마주하는, 작가의 영감이 투영된 작업들을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전시회를 보면서 시인으로 출발해 젊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예술가 성찬경이라는 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노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 용기에 감탄하면서... 문학과 예술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할까? 다른 분들이 이 전시회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자못 궁금해진다.


청금루 주인 성찬경 팸플릿
발분망식 낙이망우(분발하여 힘쓰다 보니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도 잊는다는 뜻) 독서대
로마네스크
밀핵시의 하나 <똥 일자시>
밍크 방한모
파편 순수 물질, 너는 너다
연애편지의 무게를 다는 저울
제목 미상(피아노 액션으로 만든 작품)
코스믹 댄스(초콜릿 케이스로 만든 작품)
학 한 쌍(빵 끈, 철사, 쇳조각으로 만든 작품)
답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삽으로 만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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