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온 후라 그런지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던 날, 서울역사박물관에 갔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 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산수유인 것 같았다. 코로나도, 암울한 정치판도 봄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위치는 경복궁역과 서대문역의 중간이어서 쉽게 찾았고 관람료는 무료였다. 작년 5월에 <공평도시역사전시관>을 다녀왔는데, 그때 지금의 공평동(종각 부근) 땅 밑이 조선시대에 어떠했을 거라는 내용을 전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왔다. 게다가 광화문을 재정비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어 흥미를 갖고 있었다.
육조 거리는 경복궁 앞 지금의 광화문 광장에 관청이 늘어서 있었다고 하고, 그곳을 육조 거리라고 했으며 궁궐 안에서 보필하는 궐내각사에 견주어 궐외각사라 불렀다 한다. 육조 거리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 등이 있었다.
의정부는 관원을 통솔하고 정사를 총괄하던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관청이었다. 그리고 관리의 인사를 담당한 이조, 나라의 살림살이를 담당한 호조, 외교와 의례를 담당한 예조, 국방을 담당한 병조, 소송과 재판을 담당한 형조, 살림과 토목을 담당한 공조, 관헌에 대한 감찰을 담당한 사헌부, 국가 원로의 예우를 담당한 기로소가 있으며, 한성부는 오늘날 서울시청과 같은 역할의 관청이었다고 한다. 중추부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어 찾아보니, 특정한 관장 사항이 없이 문무의 당상관으로서 소임이 없는 자들을 소속시켜 대우하던 기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관청의 자세한 업무 내용과 관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또 각 관청의 건물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특이점으로는 각 관청의 후원에 연지(관상을 위하여 꾸며진 못)가 모두 있었다. 연지는 관원의 휴식 공간이자 연회 공간이었는데, 휴식이나 연회의 목적도 있지만 목조 건축물의 방화수(防火水) 역할을 위해 비축해 놓은 소방시설이었다고 한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년 전에 수원 화성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수원 화성은 한국 전쟁 때 소실된 것을 공조에서 작성한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복원한 것으로, 그 책에는 수원 화성의 성곽의 모습과 건설 방식, 사용했던 기계의 도면과 해설, 재정과 지출 내역, 인부들 이름과 거주지역, 근무일수, 담당 작업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는 <화성성역의궤>를 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외에도 육조 거리를 다니는 관원들의 복무 시간(12시간)과 휴일, 녹봉, 관원들의 모임(같은 관청의 모임인 동관계, 같은 나이의 모임인 동경계 등), 퇴근길 풍경 그리고 광화문 육조 거리의 변천사도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물을 구경하고 나오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밑에 우리 선조들의 유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고, 더불어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유물뿐 아니라 유적도)은 훗날 후손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 자못 궁금해졌다.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었구나'일까?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구나'일까? 우리 세대가 끝나도 우리의 흔적은 그대로 남는구나 하는 생각도...
벌써 봄이 왔네요. 산수유꽃인 듯...
서울역사박물관 전경
서울역사박물관의 <육조 거리>라는 전시 명칭
의정부의 관제
이조의 업무와 관제
호조의 업무와 관제
예조의 업무와 관제
병조의 업무와 관제
형조의 업무와 관제
공조의 업무와 관제
공조에서 만든 <화성성역의궤> 소실된 것을 복원했는데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해준 이유가 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