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을 검색하다가 서울시립미술관 산하 백남준기념관이 있기에 다녀왔다. 동대문에서 내려 300m 정도만 가면 되는데,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기 쉬웠다. 백남준은 종로구 창신동 '큰 대문 집'에서 태어나 살았다고 하는데 그 집은 없어져 서울시에서는 근처 고가를 사들여 개조하고, 그곳에 백남준기념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백남준기념관 <백남준 이야기 -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전시에서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한 백남준에 대해, 그의 작품에 깔려 있는 바탕은 한국적이라는 사실(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 백남준 이야기 -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 <도시의 소리, 음악이 되다> : 백남준은 부친 공장의 방적기 소리,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본 차창 밖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미지와 소리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은 꼬마 백남준에게 시각과 청각이 통합된 공감각의 세계를 열어줬고, 그래서 피아노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전위 작곡가 존 케이지를 만나 환경의 소음과 침묵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 <원족> : 백남준의 학창 시절 기억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원족, 즉 소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남준은 원족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 세월 사람과 사람이 연을 맺기 위해 만들어 온 교통. 통신 매개체의 의미와 새로운 매체의 창안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위대한 비디오 예술가는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인간이 땅을 빼앗길 수는 있을지언정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함으로써 시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가장 적절하게 정의했는데 이는 바로 비디오의 가장 중요한 법칙입니다.('렉스프레스'지와의 인터뷰, 1978)"라고도 말했다.
- <나, 너, 땅 그리고 하늘> : 백남준의 드로잉에는 꽃 형상의 이면에서 여러 개의 원이나 방사형으로 늘어선 점들이 모여 형상을 만드는 모티프가 자주 등장한다. 백남준의 세계에서 동심원 형태는 상이한 개체, 때, 장소를 연결하는 커뮤니티의 기호다. 작품 '다다익선'은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겨 1003대의 모니터를 사용해 나와 너, 땅 그리고 하늘의 연결을 기원한 백남준의 민족적 축원이라고...
- <달은 가장 오래된 TV> : 대야에 담긴 물과 달이라는 위성은 공기의 흐름이나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송출하는 방송국과 같다고... 또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서 어린 시절 물과 달에서 얻은 영감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백남준의 텔레비전은 수신된 전파를 그대로 보여주는 기계가 아니라 사용자가 마음대로 가지고 유희하는 완전히 새로운 기계였다고...
- <책과 영화의 기억> : 학창 시절 백남준은 철학자 안병욱에게 배운 국어 수업과 역사학자 천관우에게 배운 한문 수업, 영문학자 김진만에게 배운 영어 수업에서 예술과 인생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 또 백남준은 다락방에서 1937년과 그 이전에 발간된 영화 잡지들을 발견하고 접하게 되는데, "그 책들은 서구 세계로 열린 나의 유일한 창이었다. 지금도 그때 맡았던 부드러운 먼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은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문학의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였다."고... 그리고 백남준은 '정지용은 언어의 의미와 언어의 시각적 이미지를 모두 장악한 시인'이라고, 또 <삼국유사>에 대해 '삼국유사는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화하고 있으며, 역사와 삶의 혼합이라고... 인간의 판타지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 <김순남과 쇤베르크> : 백남준은 열네 살 때 이건우 선생님에게 작곡을 배우고, 신재덕 선생님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두 분 다 김순남 선생님의 지인들 모임이었다고... 월북 작곡가 김순남은 '산유화', '진달래꽃' 등을 작곡한 분이고 그때 쇤베르크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 <애꾸 무당> : 어려서 백남준 집안에서는 절기가 변하고 큰일이 있을 때면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고 한다. 백남준의 집에 자주 왔던 무당이 하필 애꾸 무당이었다고 하는데, 한쪽 눈이 없는 애꾸 무당은 부족한 육신의 눈을 채우는 마음의 눈, 눈을 대신하는 직관력을 지니며, 그러한 마음의 눈, 이심전심의 눈에 대한 암시는 백남준의 드로잉 곳곳에 등장한다고... 그래서 백남준의 사상에는 인간의 소통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고 그것은 미술과 음악을 넘어서 전자 매체건 사람이건 간에 쌍방을 잇고 통하게 하여 마침내 감흥을 느끼고 밝게 키우는 것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 <예술의 혁명> : 청소년기에 백남준은 마르크스와 쇤베르크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마르크스로부터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기계문명 시대의 역사 인식과 유토피아 건설의 과학적 논리를 배웠다고... 1963년에 백남준은 자신의 전시 포스터로 1960-1961년 발행된 한국 신문지면을 사용해 한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인 4.19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정치적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1992)"
* 과천 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보면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보다 보니 조금은 이해되었다. 알아야 눈에 들어오고 보아야 또 새롭게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