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글, 사진 서서희
평일 아침 넓은 객석을 차지하고 보는 조조영화가 나를 기쁘게 한다. 내가 본 조조영화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문라이트>, <히든 피겨스>, <택시운전사>, <공범자들>, <덩케르크> 등이다.
나는 3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조조영화를 본 적이 없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친구가 조조로 보면 영화를 싸게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조조영화라서 싼 데다 카드 할인까지 있어 그때 3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본다고 했다. 나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일하는 그 시간에 영화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래서 지금 내가 그런 시간에 조조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기쁘다. 처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조조로 보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문자를 보낸 기억이 난다. '나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나 홀로 여행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평일에 하는 나 홀로 여행이었다. 내가 택한 나 홀로 여행은 "O - TRAIN". 아침 8시 15분 서울역을 출발하여 서울에서 철암까지 가는 열차. 어려서 살던 강원도 땅으로 가는 기차인데, 출발지에서 내가 탄 3호차는 나 혼자라 기차 한 칸을 전세 낸 기분이었다. 다음 역부터는 사람들이 많아 창밖 풍경을 감상하면서 본격적인 기차여행을 시작했는데, 이 기차는 철암까지 가서 2시간쯤 머물다 서울로 다시 오는 기차로 1일 여행으로는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스위스 체르마트역을 본뜬 분천역 산타마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양원역', '천연기념물 417호 태백 구문소', '구문소 옆 태백자연사박물관', '철암탄광역사촌 옥상 위에서 바라본 철암 옛 탄광촌' 등 블로그 사진을 다시 보면서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이른 아침 도서관의 조용한 분위기가 나를 기쁘게 한다. 집안일을 끝내고 도서관으로 출근하면 10시쯤이다. 이 시간에 도서관에 올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수험생이나 인생 2막을 즐기는 중. 노년의 남성들, 그리고 그 속에 끼어 있는 나.
나는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인터넷 기사와 영화도 본다.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취준생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핸드폰 문자 소리에도 신경을 쓰면서 내 나름 여유를 즐긴다. 도서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거기에 옆 건물 500원짜리 아메리카노까지 즐기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다.(코로나 이전)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수요일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무료로 대여받은 공간에서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모임을 가질 수 있다. 글쓰기 공부도 신화 공부도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지니의 마술램프 같은 내손도서관이 있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한다.
신화 속 이야기가 지금 나를 들뜨게 한다. 인도 신화인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수메르 신화 <길가메쉬>, 페르시아 신화 <샤나메>. 키르기스스탄 서사시 <마나스>, <북유럽 신화> 등을 읽으면서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인도 신화를 배우면서 '역행보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면, 다른 신화를 읽으면서는 각 신화에 나오는 여성들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신화를 통해 '시타', '드라우파디', '인안나', '카누케이' 같은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수메르 신화의 인안나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 뛰어난 지략, 과감한 실천력 등 다른 여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를 끄는 매력적인 인물로 수메르 신화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북유럽 신화>를 읽으면서는 말썽을 일으키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인 '로키'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길가메쉬>에서는 '성경'과 유사한, 아니 '성경'보다 앞서 일어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어, 다음에는 성경을 '신화'와 비교하는 의미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는 남편을 따라다니는 것도 나를 기쁘게 한다. 2시간 정도 힘겹게 올라간 불암산 꼭대기에서 본 '바위종다리'. 겨울에 우리나라를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새인데, 20여 마리가 등산객들 옆에 날아와 등산객들이 주는 빵과 과자, 과일 등을 쪼아 먹는다. 광릉 수목원에는 '멋쟁이'와 '양진이' 등이 살고, 물이 얼어있는 곳에는 '청도요'도 산다. 영하 17도의 날씨에도 광릉 수목원에는 사진사들이 모인다. 나는 식물원에도 들어가고 눈 쌓인 수목원의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열심히 귀동냥을 한다. 암컷과 수컷은 어떻게 다르고, 수컷의 색깔이 얼마나 예쁜지, 누가 어떤 나무의 열매를 좋아하는지 등을 듣는다. 창경원에는 연못이 모두 얼어, 새들은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을 먹으러 지붕 홈통 근처에 앉는다. '밀화부리'라는 새가 있어 찍는데, 그 속에 섞인 '큰 밀화부리'가 희귀한 새라고 한다. 새 도감을 찾으면서 날개에 흰 부분이 한 개인지, 두 개인지에 따라 새 종류가 달라진다고 남편은 열변을 토한다. 이렇게 따라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을 집에 돌아와 글로 쓴다.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내 책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불암산과 광릉수목원과 창경원의 새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4월에는 외연도라는 섬에 들어간단다.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철새들이 물을 먹기 위해 섬에 잠깐 앉을 때, 그런 희귀한 새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는다고 하니 이번에는 꼭 따라가야지!
* 2018년 퇴직 후 도서관을 다니면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