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3박 4일 (비행기 결항으로 2박 3일이 3박 4일로)
제주신화를 공부하면서 제주도에서 굿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2박 3일 약속을 잡고 내려갔다. 하지만 힌남노 태풍이 올라온다고 해서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해 10번을 번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일단 약속이 되어 있으니 내려가기로 한다는 결정이었다.
내려가는 날은 구름이 많이 끼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날씨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에 도착하니 구름이 많고 가끔 보슬비도 왔지만 그래도 어쩌다 햇빛이 반짝 나는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도착해서 국립제주박물관을 찾았다. 국립제주박물관에는 일반적인 박물관 전시물들도 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제주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이 있었는데 60-70년대 사진들 속에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제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 지하 1층 <실감영상실>이란 곳에서는 '제주 영상시, 심원의 명상'이란 내용, '표해, 바다 너머의 꿈'이란 내용의 입체적인 자료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감상하고 있었다.
'제주 영상시, 심원의 명상'은 11분짜리 영상으로 <바다 한가운데 솟아난 화산섬 제주는 돌과 숲, 물, 바람이 어우러져 고유한 자연유산을 만들었습니다. 제주 자연이 주는 고요한 사색의 풍경을 담은 <제주 영상시 심원深遠의 명상>은 자연을 닮은 음악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라는 소개글이 쓰여 있다. 마치 제주도 곳곳을 내가 직접 걷고 만지고 느끼는 경험을 하게끔 입체적인 자료를 보여주고 있었다.
'표해, 바다 너머의 꿈'은 12분짜리 영상으로 <국립제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한철의 <표해록>(1771)을 바탕으로 거친 바다를 건너 낯선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오는 이야기를 환상적인 미디어아트로 표현하였습니다.>라는 소개글이 쓰여 있다.
제주에 가시는 분들에게 잘 알려진 관광지뿐 아니라 국립제주박물관도 한번 찾으시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둘째 날은 제주도 굿의 현장을 돌아봤다. 황다리궤, 우렝이돗당, 자운당, 두리빌렛당, 왕돌앞당 등... 여기에 관한 내용은 다음에 다시 자세히 서술하고자 한다.
오전에 당올레를 몇 군데 돌아보고 오후가 되니 빗방울이 굵어져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셋째 날은 아침부터 비와 바람이 심해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잠깐 비가 그치는 듯해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100미터도 채 가지 못해 온몸이 젖어 다시 들어오고 말았다. 이미 예약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이 와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컵라면과 햇반으로 식사를 해결하며 하루를 보냈다. 밤이 되니 튼튼하게 지어진 펜션인데도 바람이 옆에서 부는 것처럼, 마치 통돌이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비바람이 몰아쳤다.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잠이 들었고 새벽이 되니 바람이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TV를 켜니 태풍은 이미 제주를 거쳐 포항 울산으로 옮겨가 있었고, 아침에 나가보니 숙소 주변으로는 소나무 잔가지가 부러져 있었지만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10시쯤 밖으로 나가 북촌 바다를 바라보니 파란 하늘이 나와 있었다. 언제 태풍이 몰아쳤는지... 점심을 먹으러 나와 바라본 함덕해수욕장의 하늘은 더 맑게 개어 있었다.
힌남노 태풍이 강력하다는 사실은 TV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태풍의 한가운데 제주에 있어보니 힌남노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튼튼한 집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비바람은 그 위력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한밤중에 부는 바람의 위력은 그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고,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세상 모든 신들께 빌게 만드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내가 있던 곳은 제주 북쪽이어서 피해가 덜했지만 제주 남쪽 서귀포 지역은 피해가 더 심했고 내륙인 부산, 울산, 포항 등에서는 더 큰 피해가 난 것 같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기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제주의 일만 팔천 신들께 두 손 모아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