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는 온통 우리 차지였다

- 2016 한국해운조합 <섬 여행 공모전>

by 서서희


청산도는 온통 우리 차지였다


글 서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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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을 한 주 앞둔 겨울 막바지. 우리는 기차를 타고 광주 송정역으로 모였다. 서울, 대전, 광주에서 제각각 들뜬 마음으로 잠을 설쳤지만 모두 환한 얼굴이었다. 용산 역에서 먹은 쌀국수도 추운 날씨를 잊게 해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두 만족한 얼굴로 KTX에 올랐다. 용산에서 광주까지 2시간 남짓. 1시간 정도 가니 익산에서 타기로 한 친구를 만나고 이제 광주 송정역에 도착. 세상이 정말 빨라졌다. 한반도 남쪽 한참 아래인데 이렇게 빨리 도착하다니……. 모두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광주 송정역에서 모두 모여 조그만 노란색 버스로 갈아타고 우리들만의 조촐한 여행을 시작했다. 구정을 앞두고 여행 손님이 없어 여행사 직원들도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해서 더 즐거웠다. 한참을 달리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해남 땅끝마을. 해남에 가면 꼭 들른다는 안내자분이 자신 있게 권한 식당에서 먹은 백반은 정말 꿀맛이었다. 고등어구이, 싱싱한 채소, 만나기 어려운 나물 등. 미역국과 파래 무침이 정말 맛있었다. 손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밥상은 우리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는 집을 소개해준 여행사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이었다.


노화도 가는 배를 타기 전 애송리 해수욕장에서 사진 한 장 찰칵. 누가 더 멋지게 나오나 포즈를 잡았다. 애송리 해변도 사람이 없어 온통 우리 차지였다. 바다만 보아도, 파도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우리들이다. 통영 앞바다 몽돌해수욕장의 파도소리와 애송리 해변의 파도소리에 대한 친구의 거창한 의견을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겨울 해변에서 자갈과 파도가 만들어 내는 <자그락자그락> 소리에 마음을 뺏긴 우리는 5학년 철부지 일곱 소녀들이었다.


우리는 38년지기 대학 동창이다. 2년에 한 번씩 여행을 하기는 하지만 섬으로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노화도 가는 큰 배를 타면서도 혹시나 뱃멀미를 하는 친구가 있을까 봐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다. 다행히 멀미하는 친구는 없었다. 정말로 신기했던 것은 노화도 가는 큰 배가 모두 우리 차지였다는 사실이다.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옛날이야기, 자식 이야기, 건강 이야기 등으로 바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다를 보면서 수다로 보낸 시간은 짧기만 했다. 이번에 손녀를 얻은 A와 B는 아기 키우는 얘기로 끝이 없고, 어젯밤 감기로 고생하느라 잠을 못 자고 온 C는 기력을 충전하느라 뜨끈하게 등을 지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만년 소녀로 통하는 D. 대전에서 일찍 출발하느라 고생한 E. 국문과 출신이라 감성이 남다른 F. 그리고 퇴직을 앞둔 나까지. 모두 할 얘기가 많기도 했다. 바다는 추운 날씨에 바람도 좀 불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따뜻한 바닥에서 식을 줄 몰랐다.


드디어 보길도에 도착. 여고 시절 나에게 윤선도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그렇게 멋진 작품을 남긴 윤선도와 윤선도가 살았다는 보길도, 세연정은 삼사십 년을 기다려 온 나의 버킷리스트 1호였다. 옛날에는 보길도 들어오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지금은 많이 쉬워져서 접근성이 좋다고 한다. 우리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광주에 와서 버스로 완도를 왔지만 서울에서 버스로 완도까지 올 수도 있단다.(센트럴시티에서 하루에 4번 운행한다. 편도 5시간.) 완도에 도착하면 완도에서 배를 타고 노화도로, 노화도에서는 차로 보길도에 간다. 이렇게 좋아진 교통편 때문에 우리는 평생 그리워했던 보길도를 쉽게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보길도에 갔을 때는 겨울 끝자락이라 동백이 한창일 것으로 기대하고 갔다. 하지만 한차례 비가 온 뒤인지라 먼저 핀 동백은 지고, 다음 동백은 아직 몽우리인 상태였다.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 건강한 동백나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세연정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다듬어 최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곳으로 한국형 정원의 대명사로 불린다. 돌 하나, 나무 하나도 그냥 놓이지 않은 듯 정말 아름답다. 옥소대를 향해 활을 쏘기도 하고, 무희들을 춤추게 하고 감상하면서 세연정에서 술도 마시고, 부부만 올라가서 글공부에 방해받지 않았다는 동천석실.(그런데 이미 남의 아내였던 19살 어린 여자를 데려와서 오랫동안 해로했다는 이야기들) 굴뚝 다리라 불리는 판석보 등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대했던 풍경들이었지만 들려준 얘기들은 조금 의외의 사실이 많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간 윤선도. 내가 그리워 한 윤선도와는 조금 먼 이야기들.


보길도에서 만난 윤선도는 조금은 실망이었다. 오우가의 윤선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랄까? 고귀한 정신세계에 사는 줄 알았던 윤선도가 물질적인 세계에 푹 빠져 산 듯한 인상. 물질이 뒷받침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섬이고 정자인 것 같아서였다. 소녀의 감성으로 만나고자 했던 윤선도는 완도 땅 전체를 소유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일 따름이고,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그것을 자랑하듯 누리면서 산 사람이었다. 당시로선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세연정을 꾸미기까지의 과정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나의 감성은 그 사실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소녀 시절이었으면 감탄만 했겠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세상살이를 많이 경험한 이 나이의 우리들은 감성이 많이 무뎌져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다시 배를 타고 완도로 나왔다. 땅끝까지 걸어가면서 지는 해를 감상했다. 걸으면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새삼 한반도의 끝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벌써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리가 아픈 사람은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갔다 오고, 아직 건강을 믿는 다섯은 씩씩하게 땅끝까지 다녀왔다. 우리나라 육지에서는 최남단이라는 곳. 사진 한 장이라도 정성껏 박으려고 포즈를 취했다.


그날 밤은 완도 호텔에 묵었다. 완도가 전복 생산지라 전복 정식과 회 정식을 먹기로 했다. 비싸긴 했지만 너무나 만족한 음식이었다. 음식과 함께 밤늦게까지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30여 년을 만나면서 노래방 한번 갈 줄 모르는 우리의 최강 무기는 밤새 이어지는 <이바구>였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호텔 화장실에서 만난 박노해의 시는 거기에 더한 감동을 주었다.


둘째 날 일찍 맛있게 끓여주신 맛난 전복죽을 깔끔하게 비우고 선착장으로 갔다. 청산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다. 성수기에는 그 큰 배가 꽉 차고, 섬을 오가는 횟수도 여러 번이라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아침 일찍 떠난 그 배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우리들은 또 방 하나를 차지했다. 어제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는데 가는 내내 우리는 쉬지 않고 또 이야기를 나눴다. 호호호호, 깔깔깔깔. 어제 몸이 안 좋았던 C도 오늘은 기력을 찾아 이야기에 가세를 했다. 청산도는 그렇게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 보길도보다는 기대를 덜 갖고 갔으나 감탄사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청산도는 완전 우리 차지였다. 추운 날이라 청산도를 걷는 사람은 우리들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운전하시는 분이 우리를 ‘행운아’들이라고 했다. 성수기에는 이 길이 꽉 차는데 여러분은 차로 갈 수 없는 부분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다고. 그래서 거기서부터는 걸으면서 청산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라는 주문과 함께. 꽃피는 봄의 청산도도 물론 아름답지만 우리는 꽃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청산도를 너무나 여유롭게 즐기고 내려왔다. 서편제를 촬영했다는 길은 과연 영화 속에서 느끼던 시골길의 한적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기도 하면서 걸었다.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곳에서는 내가 그 주인공이기라도 한 양 한껏 포즈를 잡기도 했다. 절벽 끝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초분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곳에서 초분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청산도 꼭대기에 올라가서 분위기 잡고 커피도 한 잔 마셨고, 내려오는 길에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예쁜 돌담길도 걸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봄에 맛볼 수 없는 낭만적인 여행이었다. 겨울 여행도 좋지만 봄에는 더 좋다는 말을 듣고 꽃피는 봄에 꼭 다시 한번 와 보자는 약속과 함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섬을 나왔다.


청산도를 떠나 광주로 올라오다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대흥사이다. 대흥사는 서산대사를 비롯한 여러 명승의 부도가 있으며, 김정희 등의 명필 현판도 남아있는 곳이다. 기차 시간을 다투어 가면서도 꼭 들러야 한다는 안내분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마지막 1분, 1초까지 아껴가며 알뜰한 여행을 했다.


2016년 구정을 앞둔 멋진 여행이었고 새로운 한 해를 씩씩하게 시작하기 위한 다짐의 시간이기도 했다. 다음번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다 함께 걷자는 다짐을 하며 우리의 아름다운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번 여행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준 여행이었다고 서로에게 감사했다.


< 청산도, 보길도 여행에 대한 제언 >

1. 슬로시티 청산도라는 슬로건과 함께 청산도의 모든 것은 잘 정비되고 부족한 것이 없었다. 거기에 비해 보길도는 옛날의 명성과 다르게 황폐해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가꾸어지지 않고 버려진 곳이라는 느낌(겨울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이 들었다. 청산도에 비해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2. 서울에서 광주-송정까지의 기차 시간에 비해 광주에서 해남까지의 버스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KTX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광주-해남 간 연계 운송수단이 필요할 것 같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시간과 비슷하게 소요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여겨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3. 요즘은 연휴가 되면 인천공항이 북적인다는 뉴스가 방송에 자주 나온다. 아름답기로 치자면 우리의 남녘 섬도 외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홍보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우리의 금수강산을 우리가 먼저 아껴야 하고, 그러자면 관광 관계자분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KTX에서 작년에 미즈(중년 여성)들을 위한 할인행사를 한 적이 있다. 시간이 맞지 않아 가 보지는 못했지만 중년 여성들의 모임을 섬으로 유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가슴에 와닿듯이 <섬>이라고 하면 중년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청산도에서는 <내 인생을 뒤돌아보는 여행>을, 울릉도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 체험 행사>을, 홍도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백세 인생을 설계합시다> 등 테마를 정해 홍보하면 섬 여행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다.

5. 외국인들에게도 우리의 아름다운 섬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 광고에서 외국의 아름다운 장소를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알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도 섬의 아름다운 모습과 관광 코스를 알리는 행사를 각 도에서 주관해 보면 좋겠다. 여수는 그런 면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여수의 홍보 전략을 벤치마킹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애송리_해변_사진.jpg 애송리 해변에서
서편제길_2.jpg 서편제길
낙조2.jpg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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