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내손도서관 인문학 수업 중...
교사생활 중 원형탈모에 걸린 적이 있다. 중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다 공고로 발령을 받은 때였다. 중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문제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로 타이르면 대다수의 학생이 알아듣고 따라주었다. 그런 중학생들만 가르치다가 공고생들을 대하면서 교사로서의 위기가 왔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엎드려 자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니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반항을 하는 것은 아닌데, 수업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질문들. 바르지 않은 태도.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 지금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그런 상황들이 10여 년 전에는 심각하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올바른 몸가짐에서 올바른 정신이 나온다! 부부유별이 있듯이 교사와 학생도 구별이 있어야 한다. 학생은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등등.
원형탈모를 치료하면서 ‘아이들 탓’만 했다. 빠진 머리를 보여주면서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 나는 수업을 해야겠다. 수업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항변을 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나를 피하면서도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원형탈모의 원인이 정말 아이들 탓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고 아이들에게 ‘운수 좋은 날’과 ‘관동별곡’과 ‘청산리 벽계수야’라는 문학작품이 정말 필요한 건지, 교과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에 대해 수업하면 졸거나 자는 학생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르바이트생의 권리’에 대해 토론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실천하지는 못했다. 미숙한 선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야단만 치면 그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잘못한 이유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거친 아이들’과 속은 부글부글 끓고, ‘그래. 너 잘 났다.’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궤변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아이가 정은이었다. 병촌중 출신 강정은.
10여 년 전, 병촌중 시절. 전근을 가서 처음 만난 2학년 담임반 학생.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행동으로 ‘나, 문제아야. 건드리지 마.’를 온몸으로 표출하던 아이가 정은이었다. 후배를 건드려 문제를 일으키고, 동년배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해서 계속 일을 만들었다. 가정에서 관심을 갖고 지도해 달라고 어머님과 통화도 하고, 학교도 자주 오시게 했다. 정은이 어머님은 죄송하다고 하시면서 ‘정은이가 친구들 때문에 휩쓸려 다니는 것 같다.’, ‘내가 등하교를 책임지겠다.’고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셨다. 나는 어머님을 믿고 지도해 보겠다면서 정은이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내가 내민 손을 정은이는 번번이 거부했다.
그러다가 봄철 수학여행 때 설악산 비선대를 올라가는 중이었다. 평소 걷지 않던 아이들은 흔들바위까지 가는 그 쉬운 길도 헉헉대며 어려워했다. 이미 대다수 아이들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앞서 걷던 아이들 중 정은이가 눈에 띄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오는 정은이를 손잡아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하면서 흔들바위까지 무사히 올라갔다 내려왔다. 대화까지 시도해 보았지만 정은이가 말하지 않으려 해서 그냥 손만 잡아주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나에 대한 정은이의 감정이 달라졌고, 그게 눈에 확 드러났다. 손을 잡아준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좋은 감정을 심어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충고를 좋게 받아들이고, 잘못하는 것도 고치려 노력하면서 2학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얼마 전 결혼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도. 무척이나 밝은 목소리여서 너무나 반가웠다. 병촌중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는데, 기억해 주고 연락해 준 것이 너무 기뻤다.
학교는 변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려고 학교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에 밥을 먹으러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점심시간만 기다리고, 4교시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에 튀어나가 1착으로 식당에 줄을 선다. 밥을 먹고는 무단조퇴로 학교를 나가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학교급식이 학교에 오는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 잠을 자러 온다. 밤늦도록 또는 밤새워 ‘알바’를 하고 학교에서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잔다. 그러다가 어느 ‘알바’ 자리가 돈을 더 많이 주는지, 사람대접을 해 주는지 정보를 교환한다. 그런 정보를 얻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하교를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경제적인 이유가 학교에 오는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 친구들과 게임 정보를 교환하고, 게임 아이템을 사고팔기도 하고, 누가 더 잘하는지 우열을 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재미를 찾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핸드폰은 없어선 안될 교과서이고, 참고서․문제집이다. ‘게임은 나쁘다.’는 어른들 생각은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들의 문화가 있다. 그들의 문화는 어른들과 ‘다른’ 것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굳이 학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까지 학교가 껴안으려면 핸드폰을 자유화해야 한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수업시간 중 수업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요즘 아이들은 질문하지 않고 검색을 한다. ‘왜 질문하지 않느냐?’라는 어른들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냥 ‘검색이 더 쉬우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에 와서 공부도, 게임도, 잠도, 밥도 관심이 없다. ‘그냥’ 왔다가 ‘그냥’ 간다. 아침에 부모님이 깨워서 학교에 가라고 하니 학교에 왔다가 수업이 끝나서 집으로 가라고 하니 집으로 간다. 대다수의 ‘범생들’에게 학교가 ‘와야만 하는 곳’, ‘오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어 수업’을 하는 교실, ‘수학 수업’을 하는 교실이 있듯이, ‘영화감상교실’, ‘바둑교실’, ‘힙합교실’, ‘드럼교실’등을 개설해서 찾아가는 수업을 하게 하면 어떨까? ‘1학년 1반’에서 조회를 하고, 수업을 하고, 종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조회를 하지 않고도, 1교시에는 ‘힙합’ 수업을 2교시에는 ‘드럼’ 수업을 스스로 짜서 들을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학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대학에서처럼 ‘스스로’를 강조하면 학교에도 아이들이 설 자리가 생기고, 아이들에게 학교도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술을 먹고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온 학생이 있었다. 종합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런데 버스 속에서 ‘아침부터 술 먹고 학교를 간다.’고 어른들과 시비가 붙어 징계를 받았다. 그 학생이 외치던 말이 기억난다. “학교를 나오지 않는 애들이 문제아지. 학교를 나온 내가 왜 문제아냐?”
그 아이의 말이 나는 지금도 마음 아프게 남아있다. 그래서 학교는 무조건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마저 그런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내치면 아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학교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학교는 아이들의 마음과 아이들의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만이 학교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변하기를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는 살아남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