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주간의 휴가를 끝내며
횡성에서의 2주간이 끝나간다. 이곳은 방갈로 바로 앞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주변이 조용한 곳이다. 밤이면 주천강 물 흐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린다. 박지원의 <一夜九渡河記>가 실감 날 정도로 소리로만 듣는 물소리는 무서울 정도다. 어제같이 소나기가 쏟아진 날은 흙탕물이 콸콸콸 내려오니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방갈로 앞으로는 뽕나무 세 그루가 있다. 뽕나무에도 암나무, 수나무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수나무에는 오디가 열리지 않고 암나무에만 오디가 열린다. 토종 뽕나무라 알갱이가 작지만 무척 달다. 이 고장에는 뽕나무가 많다. 예전에 누에를 치던 동네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운동을 나갈 때면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가다 산 쪽으로 올라가면 뽕나무가 있고, 왼쪽으로 가도 뽕나무가 있어 산책을 나갈 때마다 오디를 한 움큼씩 따먹으며 다닌다. 지금이 오디를 먹을 딱 제철인 것 같다. 방앞에 있는 뽕나무에서 밤새 떨어진 오디는 아침 후식으로, 운동하러 나가서는 길가 뽕나무에서 딴 오디를 간식으로 먹으니 호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하나의 호사는 매일 세끼 웰빙식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셰프님이 해주는 음식을 말이다.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겨자 등 싱싱한 채소를 곁들여 맛있는 반찬과 밥을 먹으면 매일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문을 열면 주천강과 나무가 빼곡한 푸른색의 산이 보이고, 햇빛과 바람과 새소리로 하루를 보낸다.
매일 한 시간씩 주변을 걷는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나가면 넓은 감자밭이 나온다. 꽤 넓은 밭에 핀 하얀 감자꽃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대단위의 농사를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물론 기계(양수기와 스프링클러)의 도움이 없으면 힘들겠지만 말이다. 다리를 건너면 도로가 나오는데 그 도로 오른쪽으로 가다 산 쪽으로 오르면 깔끔하게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있는데, 잔디가 깔린 정원도 있지만 작은 텃밭이 있어 거기에는 옥수수, 고추, 고구마 등이 조금씩 심어져 있다. 물론 다른 곳에는 넓은 옥수수밭, 넓은 고추밭 등이 있기도 하다. 반대쪽을 걸으면 펜션도 있고 절도 있다. 그쪽은 물이 많아 여름에 피서객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방에 앉아 바깥 경치를 보면서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쓰는 거다. 책도 읽지만 쓰는 일을 더 많이 한다. 매일매일 동화 필사를 한 편씩 하고, 그동안 쓴 동시 50편을 수정하고(한 권의 동시집으로 엮으려는 희망으로), 공모전에 낼 동화를 한 편 완성하고(보고 또 보면서 계속 고쳐야 하니 갈 길이 멀다), 앞으로 6주에 걸쳐 제출할 동시 숙제 초안(18편)을 잡았다.
매일 아침이면 동시를 열어 다시 한번 읽고 고치고, 동화를 열어 다시 한번 읽고 고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매일 고쳐도 또 고칠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가끔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님들과 생활하다 보니 이제 시작인 내가 한참 뒤처진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은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 같으니 말이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게 끝나서 아쉽다. 그러면서도 돌아가면 이곳에서의 결심을 잊고 생활에 매몰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다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자는 각오로 이곳을 떠난다.
* 횡성에서 보낸 이 시간,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