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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Sep 05. 2022

영혼의 목적. 영화 <소울>

감상평. 주의바람. 다 스포임

과학자들보다 철학자들이 먼저 관찰하고

철학자들보다 예술가들이 먼저 느낀다.


영화에서 인생과,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신, 관리자, 우주 시스템의 역할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참신하고 맘에 꼭 든다. 이 캐릭터의 구체적인 형상은 없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떤 모습으로도 존재한다. 벗어날 수 없는 규칙과 원칙으로 영혼을 밀착 관리하지만 착취하진 않는다.


영화 주인공은 '조'와'No.22'의 영혼이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게 흥미롭다.

과학적으로 영혼을 증명할 수는 없어도 그 비슷한 무언가가 우리 안에는 존재한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라 느껴진다. 과학적으로 인간 포함 모든 것들은 모두 별 먼지에서 왔다. 원자와 분자와 입자로 이루어진 인간의 세포 모두 별 먼지에서 태어났으며 진화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고 멸종하더라도 별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입자는 생성된 것도 아니고 소멸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명은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의 경계 그 어디쯤에 있다. 물질적인 것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한다

'삶',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은 비 물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물질은 입자에 불과하고 본질은 그로부터 탄생하는 어떤 에너지나 힘으로 느껴진다.

입자를 하나하나 붙여서 그릇이라는 모양을 유지하는 힘, 그릇 모양으로 설계가 되는 자연스러운 힘처럼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것의 그림자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비물질적인 것이 존재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에 의문점이 생길 정도로 우리의 본질은 그 경계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영혼에게도 이미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은 감정이기도 하고 성격이기도 하다. 그중에 '불꽃'이라는 요소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요소는 인생의 목적이나 꿈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몰입하면 영혼의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요소나 그 어떤 '목적'에 집착하고 매몰되면 영혼은 우울에 빠져서 괴물이 된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대답을 해준다.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냐. 인생을 살 준비가 되면 마지막 칸은 채워져'

삶에 집중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 하는것은 좋지만 집착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인생의 목적을 영혼에 빗대어 짐작해본다.

'목적 있는 삶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내 자존심을 위한 것인가? 주변의 기대를 위한 것인가?'


목적 없는 삶에 목적이 없는 게 아니다.

진정한 여행은 어디론가 떠나는데 목적이 있지, 어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게 아니다.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는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대답을 유추하게 되는 질문이다. 대답이 '알 수 없다'와 '죽음'으로 귀결되기 쉽다.

질문에 속아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된다. 목적이 있는 삶을 위해 탐구하고 수행한다고 목적이 없는 삶은 버릴 텐가?

인간으로 설계되어 태어난 우리는 영원히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삶 그 자체가 목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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