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돌아와 여섯 달 정도를 쉬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 무언가 매우 힘들었다.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 마음을 누르고 있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그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취업을 위해 이래저래 면접을 다니긴 했지만 누굴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그 자유가 주는 시간은 아주 꿀맛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게 유지되지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취업을 하자마자 그 자유는 산산이 부서졌다.
빠따 똥군기가 있는 증권회사의 문화도 답답했지만 신입사원의 입장과 환경은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전 직장과 다른 업무였기에 바로 성과를 낼 수도 없었지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길게 가다 보면 다 해결될 상황으로 생각했다.
갑 자 기 또 다 시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 FOMC의 결정이 결정적이었다. 연봉을 낮추고서라도 일을 구했고 긴 호흡으로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일했다. 그런데 웬걸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에게 돈을 안 벌어왔으니 나가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금융 불경기에 성과를 내는 능력은 나에게 없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역시 증권가는 냉정하다. 계약 기간이 남았건만 위에서 압박을 준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다. 침몰이 예상되는 배니 각자도생 하려고 본부에서 갓 들어온 나를 밀어내려고 한다. 팀, 본부, 회사와 나 각각의 입장이 있지만 누구 하나가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시장상황이 바뀐 것이다. 역시 모든 게 계획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 걸 보니 이 세상은 여전히 정상이다.
침몰하는 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좋을지? 빨리 뛰어내리는 것이 좋을지? 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회사에서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지만 나의 정신적 건강에는 상당히 해롭다. 능력이 되면 이직하면 될 것이고 이 기회에 또 쉴 수 있다. 여기서의 필요한 능력은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능력이 아니다. 적당히 살기 위한 최소한의 신체적 기능, 즉 건강이다.
경로를 수정한 미래에 대해서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려고는 적잖이 노력했지만 깊은 빡침과 불안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미래는 항상 불안한 거다. 현재의 데이터를 추가한다고 미래의 불안값이 변경된 것은아니다 무한대의 값에 알파가 더해졌다고 값이 오르거나 내려가지 않았다.
무엇을 잃었다면 상실의 고통이 찾아오기 마련지만, '건강을 잃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모든 변화는 새로운 시작이다. 하나의 종말은 다른 것의 탄생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우울해서 날씨가 더 비참하게 느껴지면 나만 손해다. 바로 이 순간 이 날씨가 예술인 것을 감상할 여유쯤은 가져도 된다. 내가 필요한 건 단 10초간의 평화와 나 자신,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