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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n 10. 2022

아이를 대하는 자세

파멜라 드러커맨 <프랑스 아이처럼>

내가 본 최고의 심리학 책 중 하나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하여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알려준다. 기자답게 글의 정보성이 뛰어나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책을 소설같이 흥미롭게 구성했다. 그녀는 우리가  자식을, 가까운 타자를, 어린 미성숙한 사회의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준다.


주위를 돌려서 불안을 조절하는 방법은 성인인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이런 불안 대처법을 어려서부터 체득한 프랑스인들이 부럽다. 난 20대 초반에 아주 불안했다. 불안으로부터 내 마음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무지했다. 알았으면 좋았을껄... 조금 안타깝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막지는 않으며 자유로울 수 있는 법, 타인의 거절 및 나의 좌절에 대처하는 법을 스스로에게 가르쳐야 된다. 아이던 어른이던 모두에게 필요하다.


 아이는 엄마를 자신과 분리하여 인식하지 못한다. 엄마가 울면 자기도 울고 엄마가 웃으면 자기도 웃는다. 인간은 공감 능력이 높게 진화되어서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한다.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도 타인에게 감정을 위탁한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타인이 어떻게 해줘 야 내 감정이 회복된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이 어떻게 해주어도 내 감정은 바로 수리가 되지 않는다. 침대에 발가락이 세게 부딪히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욕지거리가 나온다. 누구에게 욕을 하는 건가?

스트레스와 불안을 관리하는 방밥을 어려서 부터 체득한다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좋을듯하다.


타자나 사회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은 사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로 인하여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면, 사회를 탓할 것인가?

타인이 나에게 애정을 주냐, 사회가 날 인정해주냐, 안주냐 등 타인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기준을 만족해야 되는데 이 기준이 타인인 것이다. 심지어 타인이 직접적으로 말한 의견도 아니다 내가 추측하는 의견이다. 허구 일수 있다. 타인의 의도나 생각을 정확히 짐작하기란 매우 어렵다.

허구를 근거로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다면 허구를 탓할 것인가?


예전에는 아이를 가지는것에 대해회의적 이였다.

'나처럼 미성숙한 성인이 어떻게 아이를 양육하겠어….'

확실히 경제적인 여건이 없었고. 난 아직 불친절하고 나 이외의 인간에게 희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이 생각은 바뀌었다.

경제적으로 나아진 부분도 있고 내가 성장한 부분도 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더라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졌다. 내 감정을 다루는 법을 좀 더 알게 됐다. 가까운 타인인 자식을 키우기 위해 희생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덜하게 됐다.


교육에 대해서는 회의적 부분은 여전히 있다. 어떤 교육을 받아야 아이가 더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더 뛰어난 사업가가 되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양육을 받은 아이가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인지는 알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뛰어난 사업가가 되길 원하는지 아니면 행복한 아이가 되길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바라는 게 하나 있다. 특정한 모습이나 행동이나 지능을 원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나오는 성장의 에너지 확장의 에너지를 받고 싶다. 옆에서, 지근거리에서 감상하고 싶다. 나는 늙어가지만 내가 만든, 나의 유전자가 전달된 개체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우리 모두 늙기 싫어한다. 늙음은 부정적인 성질이 있고 이 성질이 죽음이랑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없다.  사실 부정적인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종 전체가 아닌 하나의 개체의 입장에게 편향된 판단이 '죽음은 부정적이다'는 것이다. 진화가 필요한 종의 입장이나 자연의 입장에서 죽음은 좋고 나쁨이 없는 것이다. 그럼 선택 조정해서 나이 먹음에 대하여 조금은 긍정적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정신승리를 해보자


우리는 매일 조금씩 변한다.  잊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채를 쳐서 좋은 알갱이만 걸러내듯 삶을 통하여 좋은 것을 발라낸다. 망각을 통하여 잡것들은 걸러내고 좋은 알갱이를 획득하여 오랫동안 간직한다. 그중에서도 ‘나를 사랑하는 법’,  ‘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내가 매일 성장하는것 같다. 아기들은 조금씩 자란다. 매일 아침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도 조금씩 자란다. 우리도 그렇다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내 욕망을 투영하고 싶지 않다. 꽃을 꺾어서 내 옆에는 두더라도 향기나는 꽃에 향수를 뿌리는짓을 하고싶지는 않다. 꽃 그대로를 감상하고 감사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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