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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Aug 25. 2023

단편소설 민물장어

(2)

까만 세상이 푸르스름한 남색으로 조금씩 바뀌고 낮과 밤이란 게 생겼다. 낮과 밤의 길이는 서로 조금 달랐고 낮보단 밤이 더 길었다. 

난 밤을 더 좋아한다. 낮에는 아무래도 눈꺼풀에 영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잠을 잔다. 밤에는 기다란 몸뚱이 저어가며 물을 비집고 몸을 흔들어 대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여간 진이 빠지는 일이 아니다.

날이 훤히 밝으면 날 쫓아오는 것들에게 꼬리를 물릴까 봐 뒷골목을 소리 없이 슬그머니 다니며 배를 채웠다.


 먹는 게 일이었고 흘러가는 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다. 무리의 다른 녀석들도 배때지를 채우고 다녔는데 대부분 아가리도 커다랗고 몸뚱이도 넉넉해서 나보다 더 잘 먹어댔다. 내 작은 아가리와 짧은 꼬리는 누가 봐도 비루했다.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봐도 큰 녀석들이 먹이를 먼저 낚아채가는 탓에 내 몸뚱이는 실처럼 가늘 수밖에 없었다. 난 투명한 유리구슬 양쪽을 잡아 쭈욱 늘여 논 것처럼 생겼다. 그나마 이 몸이 다행인 것은 괴물 같은 녀석들의 벌어진 이빨틈 사이로 도망처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몸속 내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비실한 몸이지만 그런 놈의 이빨이 등허리를 훑고 지나가면 몸속 장기가 툭 떨어진 거 같은 기분이 들고 물이 시리게 느껴진다. 


한 번은 오밤중에 눈이 부셨다. 자는 사이 벌써 날이 밝았나 하고 어리바리한 눈을 번쩍 떴지만 느껴지는 진동이나 흐름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고 밝게 빛나는 불빛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 꼬리를 내 뼈며 줄행랑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르러 미가 한번 쭈삣 섰던 거 같다. 보름달처럼 밝게 빛나는 불빛을 따라가면 먹을 것들이 잔뜩 모여있어서 배를 채우기 편했다. 온도는 헤엄칠 정도로 적당히 식었고 아가리만 딱 벌리고 열심히 앞으로 나가면 배를 두둑이 채울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큰 녀석들보다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빛을 재빨리 따라간 그 녀석들 수가 하루 이틀 적어지는가 싶더니 모조리 사라진듯했다. 아마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고 우람해진 몸으로 더 빨리 헤엄을 처서 멀리 가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큰 몸뚱이로 더 큰 먹이를 먹는다고 상상하니 부러움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한참을 지나서 알게 것은, 사실 모두 다 어디론가 잡혀가버렸단 것이다. 난 역시 운이 억세게 좋은 놈인가 보다. 


밤이든 낮이든 나보다 큰 녀석들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그것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살아 나온 놈한테 들은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녀석이 말하기를 햇빛이 사라지더니 세상이 갑자기 새까만 밤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거 밤이면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니오?"라고 되물었더니 물이 전혀 흐르지 않았고 이리저리 심하게 요동쳤다고 했다. 그냥 밤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멀찌감치 보이는 한지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무리들의 몸이 녹기 시작한 걸 봤다고 했다. 그 녀석들은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자기 몸이 녹는 걸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는 뼈만 남기고 죽어버렸다고 했다. 

자기도 '아! 씨부럴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파도가 들이치고는 물이 흐르더니 햇빛이 보였다고 한다. 그 녀석 무리는 아마 길을 잘못 들어 끔찍한 불덩어리 계곡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다. 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녀석처럼 멍청하게 큰 무리에서 떨어지지 말아야겠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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