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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n 02. 2022

빨간 유선전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걸었다

애정결핍의 원인

어린 시절 한 가지 이유로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 이렇게 쉽게 잊힐 줄은 몰랐다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 공정함에 대한 갈망. 권력에 대항. 모든 시작이 그때부터였다.


나는 왜 공정함에 집착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다 빨간 전화기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두 살 터울인 형과 집에 단둘이 남아있곤 했다. 티비를보던 게임을 하고 놀던 항상 다툼으로 하루가 마무리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빨간 유선전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054- 2xx-8246 (수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기억난다)

왜 슬프고 화가 나고 억울한지 말했고 아니 거의 통곡하면서 호소했고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물론 형보다는 나의 감정을 기준으로) 원인을 설명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양비론 ‘둘 다 잘못했다’를 시전 했고 나의 억울함은 좀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의 해법이 불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화가 나는 게 타당한지 가까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뭐를 사달라고 때를 쓴 적이 잘 없었던 거 같다. 옷이나 물건을 원하는 마음은 적었다.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러웠던 기억은 엄청 많다. 11살 때 같이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3일 밤낮을 울었다. 밥도 먹지 않고 울다 지쳐 쓰러졌던 거 같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서럽다. 그 억울한 감정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공정함의 문제들을 가지고(많은 문제를 그렇게 본다) 열을 올릴 때 드는 감정이랑 일치한다.


바로 딱 그 감정이다


이런 공정함을 판단하는 나의 의식이 정치나 삶의 가치를 논하는 중요하고 깊이 있는 대화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투영되는 게 나의 문제이다. 집착이 있고 지나침이 있다. 회사에서 개인사에서 다툼이 생기면 감정이 튀어나오고 업무보다는 하고 있던 일보다는 감정이 중요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나를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해주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판사(상급자나 어른)이다. 이럴 땐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양비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설령 다수가 공감해줄 수 없을지라도 끝까지 가서 광장에 외치고 싶은 그런 기분이다.


내 감정이 이런 경우가 많으니 타인의 감정도 이럴 거라고 추측하고 행동을 한다. 상대방은 문제 해결을 해주기 원하는 게 아니라 자기감정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기를 원할 때가 더 많다. 그런데 나는 문제의 해결도 아니라 그 문제적 상황과 상대방 감정의 타당성을 따진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내 연애에 있어서도 이런 자격지심, 결핍이 투영된다. 낭만적인 연인의 관계에서 서로 사랑을 주는 것만이 가능하다. 서로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아니 요구를 한다고 사랑을 더 받는 게 어렵다고 본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만 엄마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기에 요구는 부정적 효과를 가진다고 본다). 당연하게도 나의 애인은 토라지고 화를 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나타나면 나는 이런 애인의 행동과 감정이 잘못된 거라 판단해버리기도 했다. 애인에게 내가 요구하는 게 거의 없는 편이다. 식탁에 앉아서 물 한잔 따라 달라는 부탁도 잘 안 하는 편이다 (또다시 착한 아이가 되어야 더 사랑받는다고 생각해서이다). 요구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애인에게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는, 일기에서는 넘치던 사랑을 입 밖으로, 말로, 몸으로, 행동으로 잘 표현 못하는 편이기도 하다.


나의 결핍 그리고 공정함을 찾는 이유도 결국은 사랑과 애정을 원해서가 아닐까라는 당연한 의심을 해본다. 행복한 연애를 하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있으면 사회 문제나 정치 이슈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행복의 곡선이 우상향으로 진행될 때는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막말을 하더라도  감정은 매우 적게 휘둘린다. 반대로 내가 바닥일 때는 정치인들의 불공정함이 나의 감정에 불씨에 휘발유를 들이 붇는다.


내가 집착하는 옳고 그름이 남의 가치를 재단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나만 옳고 타인은 틀렸어라는 어리석은 독단에 빠질까 봐 두렵다. 사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도 나의 이런 행동을 줄이기 위한 설득이다. 애정과 관심을 타인으로부터 얻으려면 그들과 나의 차이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타인과 나의 공통점에 집중해 보려고 글을 쓴다. 너와 내가 엄청나게 비슷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나 스스로 깨닫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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