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생각
알람을 듣고 7시 정도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며 잠을 깨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는 조금은 부산스럽게 옷가지를 챙기고 대충 모자를 눌러씁니다. 출근을 위해 바로 자전거에 올라탑니다. 아침 햇살을 등지고 가는 방향이라 앞은 시원하고 뒤는 따듯합니다. 도심 속 탄천변에는 따라 흐르는 맑은 물과 파란 하늘 말고도 의외로 볼 것이 많습니다. 동물이나 곤충들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기도 하고 풀과 나무들을 바뀌는 것을 보며 계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설레고도 평온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습니다. 매일 지옥철을 타야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좋습니다. 그러다 천변을 벗어나는, 인적이 드문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튀어나온 자동차가 나를 보고 급하게 멈춥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그 운전자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운전자는 미안하다며 머리를 숙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망치곤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특히 기계와 관련해서 화가 많이 나는 편입니다. 자동차가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 저를 위협하거나 진로를 방해하면 그렇습니다. 특히 제가 보행자이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 그런 상황에 놓이면 더욱 화가 납니다. 그런데 튀어나온 게 자동차가 아니라 고라니나 멧돼지였다면 달랐을 겁니다. 화가 나기보다는 무섭고 당황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나와 그 운전자이지만 화를 낸 사람은 저였습니다. 그리고 범위를 좀 더 넓혀 내가 화가 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한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면부족, 직장 내의 갈등, 여자친구와의 다툼 등이 저를 조급하고도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특정 상황에서 일이 터진 거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엄청 화가 나기도 하고 화를 내지 않더라도 그 울분이 남아 있어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좀 더 뒤로 돌아가보면 저는 과거에 매우 미래 지향적이었고 지금도 그런 편입니다. 미래 지향적인 것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면 결과에 집착하고 부정적인 결과에 실망하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쟁이나 비교우위를 통하여 성취감을 느끼면 큰 부작용이 따릅니다. 언제나 저보다 뛰어난 성취나 결과를 이룬 사람이 많았고 그런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면 나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그 뛰어난 사람들이 가까운 친구들일 때 저는 더욱더 작아지고 힘들었습니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는 이런 문제는 상당히 사회적이고 구조적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긍정적이고 특별한 면을 너무 강조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시장경제는 사회를 효율성과 결과 중심적인 경쟁구조로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육을 받을 때 스스로를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배웠습니다. 경쟁구도에서 모두가 소중학고 특별한 존재가 되려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탕 10개를 가진 친구를 사이에서 사탕 5개를 가진 아이가 스스로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평가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아이의 부모세대 격인 우리가 그렇게 교육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SNS를 보면 저는 더 성공하고 싶고 해외여행도 매달 가고 싶습니다.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와 같은 것을 마음에서 지워내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가질 수 없을 때 부정적인 마음과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놓고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저같이 마음의 족쇄가 있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이 모두 좋은 교육을 받았거나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닙니다. 아직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이런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고약한 성격을 가진 어른들과도 아이들은 잘 지냅니다. 심지어 그 고약한 어른들도 아이들과는 잘 지냅니다. 마음의 족쇄는 바로 이 가치관이나 세계관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비슷한 가치관, 즉 결이 맞는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습니다. 반대로 가치관이 상당히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주변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마찰의 내용을 들어보면 상당히 많은 상처를 볼 수 있습니다. 저처럼 Ego가 강하고 자기가 특별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하기 좋아합니다.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원리가 불안 회피입니다. 트라우마나 자기 경험상 대박은 못 치더라도 쪽박을 치는 결정은 안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연인이나 다른 관계에서도 그런 회피적인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상대방이 보기엔 이기적이라고 여길수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지 않거나 살아가지 않는 게 답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에게 상당히 비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인간들이 사는 모습은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강아지를 예로 들자면 나의 반려견과 친구집의 강아지는 천지차이지만 생물학적 강아지로 보면 골드레트리버나 치와와도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인간도 딱 그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이유와 방법에서 남들보다 더 특별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전거 이야기로 돌아가, 횡단보도를 밀고 들어오는 그 자동차 운전자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안전하게 주변을 살피는편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