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이되다(13)

베트남에서의 시간

by 쏴재

그는 약 3개월간 여유롭게 지내며 어학당을 다녔다. 그러던 중, 싱가포르 부동산 개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뉴욕에서 일한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월급은 한국에서 받던 것과 비슷했지만, 베트남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 덕분에 경제적 여건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


베트남은 그가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도착한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시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4~5년이나 머물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의 삶에 뚜렷한 목표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깨달았다. 나라의 경제적 성장과 국민의 행복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그는 원래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단둘이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며 떠드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인류의 도덕성이 발전한다면 결국 공감의 양과 질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느껴지는 경제적 정체와 성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는 그런 감정이 주변에서 번져가는 것을 느꼈다. 반면, 베트남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 베트남 거주자들은 "지금의 베트남은 IMF 이전의 한국을 닮았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베트남은 도전적인 환경이었다. 도로 체증은 끔찍했고, 공기는 탁했다. 사회적 매너나 배려 문화도 그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길거리 환경은 지저분했고, 걸어 다니기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혼란스러운 도로 교통은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베트남 현지 휴양지에 한 번 가려 해도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은 그의 마음을 녹였다. 그는 마치 전쟁 후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군대 같은 선진국들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욕 넘치는 베트남 국민들을 비교하며 그 차이를 느꼈다. 베트남은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안고 싸워가는 군대 같았다.


그는 베트남의 건축에도 매료되었다. 베트남의 전통 건축은 동북아, 즉 한·중·일 전통 건축과 닮은 점이 많았다. 동남아 건축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특히 지붕의 구조에서 두드러졌다.


지붕은 비를 막고, 태양을 적당히 가리는 역할을 한다. 동남아처럼 적도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태양이 머리 위로 거의 수직에 가깝게 뜨기 때문에 처마가 짧다. 하지만 한국처럼 위도가 높은 곳에서는 태양의 각도가 낮아 처마가 길어야 빛을 적절히 가릴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각 나라의 위도와 기후에 따른 설계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베트남의 건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을 받은 인도차이나 양식이었다. 이는 서구와 동남아 스타일이 절묘하게 혼합된 형태로, 홍콩이나 상하이의 개화기 양식과 비슷하면서도 베트남 특유의 원색적이고 고풍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호찌민의 카페들은 더 화려하고 밝은 색감을 선호하는 반면, 하노이의 건축은 고풍스러움과 안개 속에서 은은한 전통미를 드러냈다. 그는 아침 안개 속 자전거를 타고 전통 시장을 오가는 여인의 모습에서 베트남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특히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는 현대적인 도시와도, 전통적인 거리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베트남만의 독특한 조화 속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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