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맛
베트남에서 그가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혼재된 모습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섞인 분위기가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에서 점차 시장경제로 전환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완전히 자유시장경제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이전에 경험했던 한국이나 서구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베트남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한편으로는 집단적 가치와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적 측면이 두드러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개인의 야망과 물질적 성취 욕구가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그는 약 2년마다 스마트폰을 바꾸는 듯했다. 노트북과 맞먹는 가격이라 부담이 컸지만, 베트남에서도 그와 비슷한 소비 패턴이 관찰됐다. 베트남은 한국 국민 평균 소득의 4분의 1, 또는 그 이하인 국가였지만, 많은 저소득층 소비자들조차 고가의 스마트폰, 특히 아이폰을 선호했다. 한 달 월급으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갖고 싶어 하는 현상이었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기를 넘어 사랑과 관심을 연결해 주는 도구였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유튜브, 카메라 같은 앱들은 이러한 가치를 제공해 주었다. 저소득 소비자들에게도 스마트폰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사랑이 중요한 가치라면, 그것을 위해 큰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 불합리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소득의 성격에 대해 고민했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은 고결하고 존엄하다고 느껴졌다. 반면, 빌딩이나 투자 같은 비인격적 자산이 벌어들이는 자본소득은 조금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높은 빌딩의 월세 수익이 한 개인의 연봉을 훌쩍 넘는 현실이나,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노동자의 일당이 계산되는 방식을 볼 때마다, 그 불균형이 그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공장은 노동력뿐만 아니라 땅, 원재료, 기계 같은 자산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이런 자본적 투입이 필수적임을 알면서도, 그는 노동소득이 더 순수해 보였고 자본소득은 어딘가 모르게 비열해 보였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없다면 지금의 경제 체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뉴스에서 돈 100만 원이 없어 생명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화가 났다. 취업난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상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상주 가정부를 보기 전까지 이 직업을 슬픔으로만 바라봤다. 가정부로 일한다는 건 자신의 가족을 돌볼 시간을 포기하고 남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기에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베트남의 고급 주택 단지에서 가정부와의 관계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고급 주택에는 가정부를 위한 방이 따로 설계되어 있을 정도로 가정부가 보편적이었다. 그와 가족 간의 관계는 단순히 돈으로 고용된 직원이 아닌 친척 이모와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여전히 이 일이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상호 의존과 돌봄의 의미를 발견했다.
베트남 사회는 예상외로 평등한 면모가 있었다. 공공장소에서의 사람들 간의 태도는 한국보다 덜 위계적으로 보였다. 물론 자산가와 저소득층이 완전히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평등의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장이 직원을 함부로 대하거나, 카페나 편의점 점주가 직원들에게 막 대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처럼 느껴졌다.
직장 문화는 처음엔 그에게 이상하게 보였다. 업무 시간에 잡담과 사담이 잦고,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외국인 관리자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이고 회사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이것이 단순한 비효율이 아닌, 사람 간의 연결과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세상이 돈을 과도하게 중요시한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종종 돈이 행복의 원천이라고 믿지만,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착각이 만든 세상은 단순히 허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가 물질적 것에만 치우친다면, 우리는 진짜 원하는 것과 착각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를 혼동하게 된다. 그는 소비자로서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을 의식적으로 거르는 행동은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결국, 돈과 물질은 수단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사랑, 존엄, 그리고 인간적 연결이었다. 그는 이 깨달음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점차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