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의 나라
오늘 출근길도 여전히 막혔다. 왕복 4차로에 인도가 없는 이곳 도로는 오토바이가 대부분이고, 차들은 마지못해 1차선에 몰려 있다. 오토바이 도로와 자동차 도로가 분리된 곳도 있긴 하지만, 신호 체계는 종종 따로 작동해 위험천만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직진 신호에서도 우회전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1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려는 차가 직진하려는 2차로의 오토바이를 가로질러야 한다. 이런 교통 시스템 속에서 교통 체증은 일상이 되고, 잦은 사고는 숙명처럼 보인다.
오늘도 도로 한복판에서 차량과 오토바이가 충돌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서 있었고, 사고 차량들 또한 도로 위에 멈춰 서 있었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차량들이 옆으로 비켜주지 않아 도로가 완전히 막혀버린다. 공안이 출동해 사고를 처리하고 교통정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교차로 한복판에서 사고가 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차량은 교차로를 완전히 가로막고 서 있고, 양방향의 흐름은 끊겨버린다. 시간이 흐르며 정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는 이곳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차를 타고 다니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스트레스도 배가된다. 처음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랩(Grab)이나 우버 바이크를 이용해 출퇴근하곤 했다. 체격이 작은 동양인인 그에게 오토바이 뒷좌석은 다소 아슬아슬했지만, 그보다 큰 서양인들이 현지 기사의 작은 바이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더 눈길을 끌었다. 작은 바이크가 커다란 체구를 감당하며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모습은 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자주 매달려 다니다 보니 그는 직접 운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랩 서비스의 요금이 저렴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인이 직접 운전하면 더 저렴할 거라 여겼다. 결국 그는 250달러를 주고 중고 오토바이를 구매했다. 명의 이전은 하지 않았지만, 등록증과 국제 면허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에게는 한국에서도 차를 소유했던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이 중고 오토바이는 그에게 처음으로 '자기만의 차량'이었다.
출퇴근뿐만 아니라,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낯선 동네를 탐험하기도 하고,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상의 변화를 즐겼다. 그러나 이 작은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사이공강 터널 한가운데서 오토바이가 멈춰 섰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차들이 질주하는 터널 안에서 오토바이를 밀고 나왔다. 결국 서비스센터에 도착해보니, 연료 펌프가 고장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직원은 고쳐봤자 소용없으니 새 오토바이를 사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은 안 된다. 조금만 더 타야 한다.'
결국 그는 150달러를 들여 부품을 교체했다. 새 부품으로 수리를 마친 그의 오토바이는 이제 400달러짜리 중고 오토바이가 되었다. 처음부터 더 좋은 걸 샀어야 했다는 후회가 스쳤지만, 어쨌든 문제는 해결됐다.
처음에는 더 좋은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종주를 해볼까 하는 꿈도 꾸었다. 하지만 그는 곧 오토바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근을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 무리하게 끼어드는 젊은 운전자, 심지어 대형 트럭과 뒤섞여 달리는 모습은 그를 매번 긴장하게 했다. 그는 어느 날 출근길에서 일어난 끔찍한 교통사고를 목격한 뒤로 더 이상 오토바이를 재미 삼아 타고 다닐 마음을 접었다.
그는 이제 오토바이를 오직 출퇴근 용도로만 사용한다. 업무 외의 이동이나 테니스 모임에는 다시 그랩 차량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도로 위에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우기철이 되면 도로 곳곳이 물에 잠긴다. 한 번은 배기구까지 물이 차는 도로를 지나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후로 그는 오토바이 트렁크에 항상 우비를 상비하게 됐다. 그러나 우비를 입고 달려도 젖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현지인들은 비에 젖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오토바이용 우비는 앞뒤는 막아주지만 양옆은 뚫려 있어 비가 쉽게 스며들었다. 그가 탔던 그랩 오토바이 기사와 함께 쓰던 우비는 낡고 비에 젖은 상태라 냄새도 고약했다.
오토바이는 그에게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도난의 위험도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차를 잘못하면 오토바이가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고, 도난을 피하기 위해 항상 조심해야 했다. 그는 이곳에서 오토바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러나 얼마나 쉽게 없어질 수 있는지 배우게 됐다.
결국 그는 베트남의 도로 위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곳의 교통 체계와 오토바이 문화는 여전히 그에게 도전이지만, 이제는 그것이 그의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