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술
알코올 도수가 약 30도쯤 되는 베트남 보드카는 그에게 딱 알맞다. 한국 어르신들이 "옛날 한국 소주 맛과 비슷하다"라고 하시는데, 금복주가 30도쯤 됐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라고 한다. 지금 소주보다 두 배나 강한 독주이지만, 보드카라고 하기엔 다소 약한 느낌이라 오히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는 문득, 이 술의 이름이 왜 '보드카'로 정해졌을까 생각해 본다. 러시아와의 사회주의 형제 관계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소주는 일본에서 명칭을 따온 것일까?
베트남 사람들은 증류주보다 맥주를 훨씬 사랑한다. 큰 유리 머그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맥주를 시원하게 따라 마신다. 얼음 때문에 맛이 조금 옅어진 듯싶지만, 그도 금세 이 방식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이제 그냥 맥주를 마시면 그 맛이 강하게 느껴져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특히 Bia hơi라는 수제 맥주는 가격이 단돈 500원에서 1,000원 수준으로 믿기 힘들 정도로 저렴하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고급 라벨의 수제 맥주가 아니라, 동동주 같은 가내 수공업 맥주다. 큰 플라스틱 통이나 대야에 담겨 있으며, 얼음을 띄워 차갑게 보관한다. 잔으로 떠서 한 잔씩 마시는데, 위생 상태를 생각하면 자주 찾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독특한 감성과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라 가끔은 즐기게 된다.
반면, 좀 더 위생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수제 맥주집을 많이 자주 찾는다. 여긴 라거나 흑맥주를 2,000~3,000원 정도로 즐길 수 있다. 가게 내부는 커다란 양철 발효통과 나무로 장식된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맥주 냄새와 함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는 일요일 테니스 모임을 마치고 이런 곳을 찾는데,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다.
베트남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로컬 맥주는 사이공 맥주다. 사이공 스페셜, 사이공 레드, 사이공 그린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사이공 스페셜은 녹색과 은색 라벨이 특징이고, 병 모양이 짧고 통통해 산미구엘 맥주병을 닮았다. 사이공 레드와 사이공 그린은 각각 빨간색과 녹색 라벨이 붙어 있으며, 병 크기는 한국의 일반 병맥주보다 크지만 대형 병맥주보다는 작다.
가격은 사이공 그린이 가장 저렴하고, 시골 지역으로 갈수록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지인들은 북쪽 지역 맥주인 Bia Hanoi보다 사이공 맥주를 선호하는데, 그도 그쪽에 동의한다. 맛뿐 아니라 사이공 맥주 회사의 규모도 훨씬 크다.
고급스러운 라벨을 가진 로컬 수제 맥주들도 많다. 파스퇴르 스트리트, 하트 인 다크니스, 벨고 같은 브랜드는 수입 맥주처럼 보이지만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된다. 이런 맥주는 6,000원에서 15,000원대로 한국의 수제 맥주와 비슷한 가격이다. 병에 담긴 제품은 소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브랜드의 전용 펍에서 생맥주로 즐길 때 더욱 신선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베트남의 시골 구멍가게에서는 알루미늄 통에 담긴 라벨 없는 맥주를 만나볼 수 있다. 1리터에 5,000~6,000원 정도로 저렴하지만, 공병값으로 2,500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 공병을 반납하면 환급받을 수 있다. 맛은 제각각이지만, 이 또한 베트남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현지인들의 맥주 사랑은 한국 못지않다. 동네 골목길에서 관혼상제나 명절을 맞아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풍경은 흔하다. 그는 저녁에도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아저씨를 목격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발효주인 맥주나 와인으로 생긴 숙취는 유독 심한 편이다. 다음 날 아침, 머리 한쪽이 깨질 듯 아프고 미세한 진동에도 고통이 밀려온다. 그도 이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증류주를 찾는다. 베트남 보드카는 소주보다 저렴하고 맛도 비슷하지만, 가끔은 비싼 한국 소주를 사 마시게 된다. 다음날 아침, 지갑에 쌓인 카드 영수증을 보면 후회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호찌민에는 차이나타운이 있어 딤섬과 중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많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베이징 덕과 새끼 돼지 바비큐다.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고기의 조화는 언제 먹어도 만족스럽다. 여러 명이 함께 가야 다양한 딤섬을 시켜 나눠 먹을 수 있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혼자 가면 간단히 오리구이와 밥이 나오는 메뉴를 주문하곤 한다.
재래시장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공간이다. 냉장 시설 없이 실온에서 거래되는 고기를 보며 처음엔 걱정을 했지만, 당일 도축된 신선한 고기 맛을 알게 된 후로는 마트보다 재래시장을 더 선호하게 됐다. 해산물도 재래시장이 훨씬 신선하고 다양하다. 크기가 문어처럼 큰 낙지와 연어, 참치까지 없는 게 없다. 주말 아침, 재래시장에서 사 온 이름 모를 생선을 구워 먹었는데, 연한 핑크색의 살결이 마치 작은 도미 같았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 덕분에 지역마다 기후와 식재료가 다채롭다. 후추, 캐슈너트, 커피는 물론이고, 시장에서는 개구리 고기와 염소고기 같은 독특한 재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다란 닭과 오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축되는데, 신선도만큼은 보장된다.
이 모든 경험이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깊은 매력을 더욱 느끼게 한다. 술과 음식, 시장과 식문화까지, 베트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요로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