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그는 채식주의자와 살았다. 학교 앞 지하에 있는 LP바에서 처음 만났다. 올드팝이 흐르는 그곳은 검은 나무 마감과 앨범 커버로 꾸며져 있었다. 음악과 술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수능 영어 4등급이었던 그도 그곳에서 자연스레 영어를 배웠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그에게 그곳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녀의 모든 동작에는 신중함이 묻어났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거나 비난받을까 봐, 표정은 다소 과장되었고 말은 중립적이었다. 처음 어두운 바에서 본 갈색 머리카락과 맑은 피부, 얇은 미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녹색과 회색이 섞인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밥을 먹을 때면 마치 아기 새 같았다. 작은 입으로 콩고기와 두부, 잡채를 조심스레 씹어 삼켰다.
그녀의 다름이 그를 끌어당겼다.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 앞에서는 온전한 이해를 받는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이해받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서툰 한국어로 힘겹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그는 마음 한켠이 아팠다. 해산물도, 고기도 먹지 못하는 그녀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는 그녀의 손과 발이 되었다. 새 집을 구하고 동사무소에 신고하는 일까지, 모든 게 즐거웠다. 그녀의 몸이 곧 자신의 몸인 것처럼 느꼈다. 그녀가 웃으면 그도 편안해졌고,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보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묵묵히 타국 생활을 견디는 그녀와 달리, 그는 새롭게 자란 자신의 일부가 어색했다.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환경을 탓하며 그는 제3국행을 꿈꾸었다. 먹고사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30대의 그에게는 이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10년간의 짐을 두 개의 캐리어에 눌러 담으며, 정성스레 꾸민 집을 비우는 그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