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방인이 되기로 했다. 그녀처럼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호치민 떤손녓 공항을 빠져나오자 저녁인데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뜨거웠다. 택시는 오토바이 물결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모래시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차들 사이로, 거대한 가로수들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강을 건너 도착한 숙소에서는 축축한 나무 냄새가 났다.
"드디어 도착했네." 그녀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래, 여기구나." 그도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나와서야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학교 면접은 언제야?"
"다음 주. 그런데 면접 볼 만한 옷이 없어서 쇼핑부터 해야겠어."
"7군에서도 쇼핑할 곳 많던데. 난 아파트부터 알아볼게."
"같이 가자. 시간 여유 있으니까 시내에서 쇼핑하고, 채식 식당도 알아봐 놨어."
"그래."
몸은 피곤했지만 머릿속은 집 구하기로 가득했다. 그녀가 씻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그는 핸드폰으로 월세를 검색했다.
얇은 유리창 너머로 소음이 새어 들어왔다. 커튼으로도 가릴 수 없는 햇살에 그는 일찍 잠에서 깼다. 여명도 오기 전부터 거리는 분주했다. 해가 뜨자 안개가 걷히고, 곳곳에서 반미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이 보였다. 오토바이 클랙슨 소리, 상인들의 호객 소리, 그리고 가장 크게 들리는 에어로빅 음악 소리.
숙소 아래로 내려가니 따스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파란 하늘 아래 가로수들이 지난밤보다 더 짙어 보였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발견한 커피숍에서, 그는 낮은 의자에 앉았다. 손짓 발짓으로 주문한 커피는 스테인리스 드리퍼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며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휴대폰을 보다 마신 첫 모금은 씁쓸했다.
준비를 마친 그들은 300원짜리 시내버스에 올랐다.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었다. 오토바이만 가득한 거리에서 걷는 건 그들과 떠돌이 개들뿐이었다. 신호등은 무용지물이었고, 길을 건너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채식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미세한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와 맛이었지만, 이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일반 식당에서 그녀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을 찾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그녀가 편히 고를 수 있는 곳이 나았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서는 매운 김치찌개 냄새가 그리웠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 소리가 듣고 싶었고, 간장에 찍어 먹는 회가 생각났다. 그녀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채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식당 창가에 앉아 그녀가 메뉴를 고르는 동안, 그는 맞은편 길가의 고기 굽는 냄새를 맡았다. 채소로 만든 음식들이 그의 앞에 놓였다. 그는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녀가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작은 불편함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맛을 씹을 때마다, 서울의 식당들이 자꾸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