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새 아파트도 구하기 전에 그녀는 국제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다. 차가운 형광등 아래 교실에서 처음 마주한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교육대학원까지 마쳤지만, 그녀를 선생님으로 만든 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닌 타고난 성정이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그녀의 삶은 조용하고 담담했다. 중립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성격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었다. 낯선 땅을 걷는 것을 좋아했고,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는 편이었다.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독실한 신자였던 그녀는 채식을 선택한 뒤로 한 번도 식단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와 달리, 그녀는 자신만의 고요한 중심을 지키며 살았다.
그녀의 월급으로 그들은 월세를 내고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빠듯했을 돈이었지만, 이곳에선 현지인들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 편이라 생활에 작은 숨구멍이 생겼다. 한국에서 살던 집보다 더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었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시간도 여유로워졌다.
그는 아직 일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베트남 어학당에 다니고 싶다고 했을 때,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홀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둘의 생활비와 어학당 수업료를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낯선 땅에서의 정착 초기라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그의 바람을 지지해주기로 했다. 그에게 어학당은 일종의 피난처가 되었다. 타국 생활이 그녀보다 서툴렀던 그에게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작은 쉼터 같은 존재였다. 그는 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리던 아침들이 제법 있었음에도, 술은 늘 그의 마음을 들뜨게 했고 낯선 이들과 마주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호치민에 온 지 석 달 만에 일자리를 구하고 스스로 월급을 받게 되자,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졌다.
그녀도 낯선 땅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분주했지만, 그 낯섦을 즐기려 애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이국의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일상을 천천히 빚어갔다. 매일 아침 커피 내리는 냄새, 퇴근길에 들르는 시장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들, 주말 저녁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그렇게 낯선 곳은 조금씩 그들의 장소가 되어갔다.
그가 그곳을 가장 좋아했던 건, 그곳에 희망이 있어서였다. 서울에서 그는 늘 작아졌다. 의사가 되고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졸업 후 취업을 하고서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지하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밥벌레들이 순대 속을 기어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날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매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이곳 사람들의 눈빛마저 희망으로 반짝였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믿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그 생기 넘치는 공기는 그를 취하게 했다. 멈춰 있는 것만 같던 그의 시간도 여기서는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도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