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이공 강은 거대한 뱀처럼 도시를 감고 있었다. 그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도, 늦은 밤까지 창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의 노랫소리도,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웠다. 버스가 있긴 했지만, 출퇴근을 위해 노선을 외울 필요는 없었다. 자주 다니지도 않았거니와, 차량으로는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토바이들이 만들어내는 강물 속으로 몸을 맡겼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만들어내는 물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나와야만 출퇴근이 가능했다.
몸집 작은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들의 등 뒤에 매달려 다니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그는 중고 오토바이 한 대를 샀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자신의 차를 가져본 적 없었다. 이것이 그의 첫 자가용이었다.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엔진을 울리는 작은 기계. 그것으로 출퇴근을 하고, 발길이 닿지 않았던 동네들을 둘러보았다. 호치민은 서울의 십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 도시였다. 여든 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과 민간이 지은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했지만, 교통은 여전히 열악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놓은 도로가 그대로인 듯했다. 높다란 건물들은 대개 회사 건물이었고, 상업시설은 생각보다 적었다. 도심을 벗어나면 호수와 강가, 녹지에서 한가로이 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매대들이 곳곳에 자리 잡아 음료와 간식을 팔았다. 먼지가 날리는 길가에서도 그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 풍경이 무척 낭만적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보면, 때로는 그 낭만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호치민은 진흙과 뻘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거대한 메콩강이 도시를 적시고 지나가는 하류 지역이라 땅은 늘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주변에는 산이나 언덕 하나 없이 평평했고, 대신 끝없이 펼쳐진 논밭이 있었다. 일 년에 세 번씩 벼를 수확할 수 있는 땅이었다. 어디든 한 걸음만 파고 들어가도 물이 스며 나왔다. 마치 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습지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모든 것은 조금씩 기울어져 있었고, 조금씩 가라앉아 있었다.
어느 날, 사이공 강을 건너는 터널 한가운데서 오토바이가 멈췄다. 스로틀을 아무리 당겨봐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밀기 시작했다.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고, 갓길은 너무나 좁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터널의 오르막을 빠져나와 다시 시동을 걸어보니 겨우 걸렸다. 꺼질 듯 살아났다 하는 촛불을 조심스레 옮기듯, 간신히 서비스센터에 도착했다. 동네 정비소에서 잔고장을 몇 번이나 고쳤지만 똑같은 증상이 반복되어 이번엔 직영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역시나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직원이 보여준 건 엔진으로 들어가는 연료펌프의 고장이었다.
'아... 그래서 스로틀을 당겨도 스쿠터가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구나'.
정비 직원이 오토바이를 바꾸라 했다. 너무 낡았다고. 하지만 안 된다. 그는 좀 더 오래 타야만 했다. 결국 새 부품으로 갈아끼우는 데 150달러가 들었다.
'150에 250을 더하니, 이제 넌 400달러짜리 중고 오토바이가 된 거다. 그래도 좋다. 우리는 아직 함께 달 려야 할 길이 남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