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그들은 낯섦을 즐기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일상을 반복했다. 매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그는 퇴근 후의 의례처럼 샤워를 하고 있었다. 물소리가 욕실 벽을 타고 흐르는 동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모임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있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첩 속 흐린 사진처럼.
"응, 오늘은 새로 온 사람도 있고..." 말끝을 흐리며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문질렀다. 거울 속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우리 둘만의 시간이 필요해." 그녀의 말에는 이곳에는 존재하지않는 겨울밤 창문을 두드리는 비처럼 쓸쓸함이 묻어났다.
"나도... 알아."
그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창가에 비친 그림자처럼 복잡한 감정이 눈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밤새 내린 눈이 쌓인 골짜기처럼 깊었다. 그녀는 마음속 이야기를 겨울 햇살처럼 따스하게 내어놓곤 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여전히 어려웠다.동포들과 함께할 때면 그는 마치 오랫동안 목마름을 견뎌온 사람처럼 한국말을 쏟아냈다. 영어로도 충분히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얇은 얼음처럼 위태로웠다. 그건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로 자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일은 언제나 멀고 먼 여정 같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것에 공감하는 것도 마치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마음은 그렇게 자라왔다. 첫눈이 내리던 날 창가에 앉아 혼자 바라보던 풍경처럼, 지금도 그는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이번 주말에는 여행 가는 게 어때?" 화재를 돌리기 위해 그가 말을 꺼냈다.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마치 오래된 연못에 작은 돌을 던졌을 때처럼.
"테니스는... 안 치러 가?"
"응, 호이안에 가보는 건 어때?"
호이안의 좁은 골목길에서 그들은 손을 맞잡았다. 노란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오래된 벽돌 사이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여기 정말 아름답네."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손바닥 위에서는 여전히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들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었다.
"전화 그만 보면 안 될까?"그녀의 목소리가 저녁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미안해. 중요한 연락이..."
"이번 주말만큼은 우리 둘만의 시간이라고 했잖아."
그때 하늘에서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둘은 허둥지둥 근처의 작은 찻집으로 몸을 피했다. 차향이 피어오르는 동안 그녀는 창밖의 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그 역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가 못마땅했다.
"왜 그래?"
"당신이 호이안에 오자고 했을 때, 정말 기뻤어. 하지만......"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난... 항상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마음과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한국에서 모든 걸 버리고 베트남에 온 거야. 실패하면..."
그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당신 혼자가 아니야."
그녀의 손이 그의 손을 감쌌다.
"우리는 함께잖아."
비가 그치고 난 후,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투본강의 물빛은 저녁노을을 담아 반짝였고, 골목길의 등불들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그녀는 마음을 열어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는 그저 침묵했다. 그의 진짜 불안과 결핍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마음을 꺼내는 것은 마치 자신이 선택한 이 사랑을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호이안의 거리는 더욱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