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과 그녀

산과 그녀

(10)

by 쏴재

높이가 더해질수록 세상은 달라졌다. 하늘과 설산이 절반을 차지하는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나머지 반쪽의 모습이 바뀌어갔다. 짙은 녹음과 갈색 나무들, 흙냄새 나는 대지가 사라진 자리에 옥빛 물결과 회색 바위들이 자리 잡았다. 차가운 물소리가 깊은 계곡을 타고 메아리처럼 울렸고, 때때로 멀리서 들려오는 눈사태 소리는 마치 하늘이 내는 한숨 같았다.


1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의 무게도, 돌부리에 걸린 발걸음도 견딜 만했다. 하지만 음식은 달랐다. 하루 세 번, 달밧이라는 현지식을 먹어야 했다. 녹두 수프에 흰쌀밥과 카레, 여러 반찬을 한데 섞어 만드는 음식이었다. 겉모양은 익숙한 카레 같았지만 맛은 달랐다. 입안 가득 짠맛만이 퍼졌다. 반찬 그릇 가득 담긴 새빨간 김치와, 밥상 위에서 반짝이던 간장 병이 떠올랐다. 마치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설산의 하얀 눈이 더욱 부시게 빛났다.


랑탕빌리지는 오색깃발 룽따로 가득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들이 마치 기도문처럼 허공을 채웠다. 수년 전 지진이 할퀴고 간 자리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자락 아래, 마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돌무더기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돌무더기들이 마치 묵언의 비석처럼 서 있었다.


롯지 안주인을 보는 순간 그녀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주름진 얼굴의 모양새며, 구부정한 어깨의 각도까지 닮아있었다. 그만 주저앉아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할머니', '할머니' 낯선 언어로 내뱉는 말에도 안주인은 거부감 없이 그녀를 품어주었다.


"가거라, 다시 보자. 내 아직 안 죽었다."

"죽더라도 다시 만나자."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하던 말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안주인의 가족과 친지들은 지진에서 어떤 상처를 입었을까. 할머니처럼 그들도 깊은 상실감과 고독 속에서 살아왔을까.

만약 산과 바다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이토록 찰나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체르고리에 이르러 그녀는 마침내 랑탕리룽 산과 마주했다.

산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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