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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직한 이유_09

2019

by 쏴재

코로나가 시작되고, 세상은 낯선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건조했던 그의 일상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처음에는 잠시라고 생각했던 그녀와의 이별이 어느덧 1년이 되었다. 그 사이 그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갔다. 마치 한겨울 밤, 창가에 서리가 내리듯이.


화상통화를 하면서도 그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움이 서려 있었고, 짜증은 날카로운 겨울바람처럼 그녀를 향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이 쌓아온 것들이 마치 사라져 가는 눈처럼 하찮게 보였다.


삼엄한 경계를 통과하여 돌아온 베트남의 거리는 점점 더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혔고, 도시는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정지해 있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백신을 제공받지 못했고, 식료품을 사러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그는 타국에서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외국인이라서, 채식주의자라서, 다름에서 오는 공허함에 자신이 얼마나 말라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그들은 서로를 향해 날카로워졌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절망과 공포가 그들을 삼켜갔다. 작은 다툼은 깊은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떨어져 살기로 했다. 그는 그것이 최악을 막는 길이라고,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썩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가지를 잘라내듯이. 정말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그들이 함께 쌓아온 시간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져가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함께 알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여행하기를 즐기던 그는 결국 낯선 땅에서 눈을 감았다.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덮듯이, 그렇게 조용히.


코로나는 장례식장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가족들에게 슬픔도, 애도도 허락되지 않은 시간. 그가 사랑했던 부인은 그 무거운 슬픔을 홀로 짊어져야 했다. 밤이면 그녀가 보냈던 메시지들이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는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마치 깊은 늪속에 잠긴 것처럼, 가느다란 숨만 쉴 수 있을 뿐이었다.


친구의 죽음은 그에게 거울이 되었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낯설고 초라했다. 마치 본능만으로 사는 짐승처럼,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달려온 시간들. 그녀와 헤어진 것도, 한밤중에 도망치듯 베트남을 탈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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