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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직한 이유_10

2021

by 쏴재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한국말이 귓가에 낯설게 울렸다. 이제는 그 말소리가 그립지 않다는 게 이상했다. 어쩌면 그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영원히 바뀌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낯설었다.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보였다. 도로변의 가로수들, 계절 따라 바뀌는 꽃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빵집의 냄새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이제 특별해 보였다.


뭍으로 겨우 올라와 숨을 몰아쉬는 사람처럼,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오랜 외국생활이 남긴 상처는 '불편했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지독한 시간과 깊이를 겪었다. 전에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설레었던가. 출국장으로 향하는 희망찬 발걸음은 무겁게 느껴지게 됐다. 공항버스가 지나갈 때면 이제 가슴 한편이 시렸다. 마치 오래된 상처가 다시 아파오는 것처럼.


그는 더 이상 직업이 없었지만 돌아갈 고향과 엄마가 있었다. 그의 엄마는 왜 그녀와 헤어졌는지, 왜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묻지 않았다. 마치 마음속 상처를 더 벌리지 않으려는 듯이. 며칠이 지나고, 그들은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봄볕이 따스했다. 산책로를 따라 피어난 제비꽃들이 그들의 발걸음을 반겼다. 오랜만에 맡는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정상에 오르자 엄마가 잠시 숨을 고르며 벤치에 앉았다. 그때였다. 그의 엄마가 말했다.

"괜찮다"

"다 괜찮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만 행복하면 돼, 그렇게 살면 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무언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췄다. 마치 어릴 적 아픔을 숨기던 것처럼. 서툴게 흘러나오는 엄마의 위로가 가슴 한편을 파고들었다. 그 따뜻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마음을 어디에 담아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주말이면 근교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오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는 축하를 건네며 웃을 수도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면 여전히 그 시간들이 찾아왔다. 노란 등불이 켜지던 저녁 무렵 골목길, 비가 내리던 날 들어갔던 찻집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그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귀하게 쌓아온 그것들이 얼마나 하찮게 녹아버렸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마주 보며 웃던 순간, 그의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행복에 그는 아파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비어있는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마치 오래된 집의 어두운 구석처럼, 그곳은 쉽게 들여다보기 힘든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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