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살아드립니다 (4)

회사에서 잘림, 두 번 잘림

by 쏴재

이렇게 살면 망할 것 같은데 살아보고는 싶어!

저는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살짝 망한 것도 같지만 꽤나 잘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잘림, 두 번 잘림 (30대 중반)


본국에서 채용되어 발령을 받는 주재원들과 달리 베트남 현지에서 채용되는 경우 대부분이 계약직입니다. 수입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계약조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다시 백수가 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때 잘 놀고 재밌게 보내야 합니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만 하긴 너무 아깝고 엄청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기간입니다

그렇게 몇 달간은 이직을 준비하다 한국 건설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주 6일이라 근로시간이 길었고 군대 같은 건설회사의 업무방식은 저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헤드헌터 업체에서 연락이 옵니다. 규모가 그리 작지 않은(한 번쯤 들어본) 한국 IT스타트업 회사에서 현지 진출을 위해 한국인 직원을 구하는 중이었고 저에게도 기회가 온 겁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곳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직종, IT로 전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위험해 보였지만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저답게 가기로 결정합니다. 두둑한 월급도 장점이었습니다. 창업도 한번 해보았고 스타트업에는 관심이 항상 많았습니다.

깔끔하고 멋진 새 오피스에서 근무한 지 약 2주 정도가 되었을 때쯤입니다. 채용을 결정한 대머리 이사(현지에 있는 유일한 본사 직원)가 본사에서 갑자기 채용에 대한 번복을 했다고 저에게 전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만 그때까지도 근로계약서가 제 손에 없었습니다. 현지 법인 설립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아직 현지에는 근로 계약할 회사가 없어서 본사와 계약을 해야 했고, 진행이 더디게 된다고 이해했습니다. 한국에서 취업하더라도 근무 첫날부터 근로 계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지 몰랐습니다. 헤드헌터 업체를 통하여 진행한 것이라 근로계약서를 늦게 받더라도 큰 위험이 없어 보였는데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제를 헤드헌터에게 따졌지만 그때부터 전화를 피하기 시작하더군요. 이런 사건을 발생하게 만든 회사에게도 화가 났지만 외국계 HR업체에서 일하는 한국인 헤드헌터의 태도에 더 화가 났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도 아닌 잠수라니 화가 머리 끝가지 치밀었습니다. 나중에는 도피식으로 HR 회사를 퇴사하더라고요. 그 헤드헌터도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근로자겠지만, 해외라서 어려운 점이 많았겠지만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이라 반가웠고, 나이도 비슷했고, 또 동향이라서 더 기대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인내심은 진작부터 바닥났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몇 달간 진행하게 됩니다. 먼저 한국 노무사와 계약을 했고 이를 통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접수를 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계속 다른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내가 나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정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과연 나는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사건이 벌어졌나?

내가 부주의했던 건 무엇이었나?

회사에서 어떤 목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건가?

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건설회사에서 잘 다니고 있었을까?


내가 나를 괴롭히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고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살지를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몇 달치 월급을 받는 걸로 합의를 했습니다. 힘든 싸움을 더 길게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베트남을 떠나야 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외국에 있어서 부당한 일을 겪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다른 헤드헌터를 만나 여러 차례 면접을 보고, 쉬는 기간 동안 공부도 조금 해서 부동산 금융회사로 이직을 성공하게 됩니다. 인생은 역시 새옹지마. 무려 주재원 조건으로 주거비 지원도 받고 연봉 조건도 좋았습니다. 똥차 지나가고 벤츠가 오나 싶었고 계약직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장기간 정착할 회사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입사해서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기 전까지 일단 한국에서 근무했습니다. 새로운 업무가 어렵고 낯설었지만 배울 수 있어 좋았고 설레었습니다. 이때쯤 코로나가 발병합니다. 그때는 다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팀장님도 거기서는 한국사람만 마스크를 쓴다며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먹어버렸고 담당하는 프로젝트도 진행이 더디어졌습니다. 그렇게 저의 한국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3~4년간 외국에서 지내다 서울에서 사니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친구들과 술도 마시며 같이 놀러도 가고 때마침 결혼한 친한 친구 결혼식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생활도 만족스러웠지만 서울에 살다 보니 역시 모국 생활이 좋더라고요. 외국생활은 좋은 것이 많아 보여도 불편한 거 투성이지요. 외국생활과 해외여행을 꽤 오래 해서인지 그런 환경적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적응을 빨리하는 편 이긴 합니다. 변화와 새로운 것은 좋지만 항상 불편한 게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더디게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도 어느 정도 진척이 생겼고 하노이 현지에 회사를 설립하러 출국합니다. 1년 만에 돌아가는 길이라 다시 또 설레었고 무려 법인장의 신분으로 가게 됩니다.

금의환향. 고향은 아니었지만 수년만에 계약직 외노자에서 법인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SPC가 소유하는 이름뿐이 회사의 대표지만 30대 중반에 회사 대표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주변에서도 다 법인장님으로 불러줍니다. 대단한 문서들에다 사인할 일들이 많아집니다. 이렇게 비행기를 탄 기분으로 구름 위를 걷는걸을 즐겼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면 더 크게 다칩니다. 중력가속도 법칙으로 높을수록 속도가 더 붙듯이 있듯이 나의 행복에도 정해진 규칙이 있습니다. 이때 행복은 사상누각이라 언제 무너질지를 모르는 것인데 그걸 몰랐습니다. 올라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떨어질 가능성이 생기지만,

불안과 공포를 알아차리고 느끼는 것은 어느 높이 위부터 입니다.


베트남에 도착하고 일을 하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알아차렸습니다.


대신 살아드립니다(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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