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살아드립니다(5)

금의환향

by 쏴재

이렇게 살면 망할 것 같은데 살아보고는 싶어!

저는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살짝 망한 것도 같지만 꽤나 잘살고 있습니다.


금의환향 (2020년)


베트남으로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는 마치 전시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외화를 벌기 위해 베트남으로 파병을 가는 경제 전사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는 아무도 없었고 노병들뿐이었습니다. 인천공항은 텅텅 비었고 같이 출국하는 특별 입국자 그룹 외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굴만 노출하는 방호복 같은걸 착용해야만(당국과 항공사의 조치)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한여름 날씨에 너무 덥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줄 거라는 기대감에 살짝 포근했습니다. 코시국에 외국을 나가다니, 다시 외노자 생활이라니, 슬금슬금 스며드는 불안함에 계약서 같은 서류들을 보며 잠들지도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밥을 주더라고요. 5시 30 분동 간 굶어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일... 다들 마스크를 내리고 식사를 하더군요. 방호복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는지...


2주간 격리될 숙소는 휴양지 Na Trang (냐짱) 한 리조트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과 맑은 바다를 보니 드디어 왔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그러나 격리기간 동안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순 없었습니다. 넓은 창문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희망고문 같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3번 음식을 넣어줍니다. 아주 좋은 감옥입니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 있던, 자산이 있던 이동의 자유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는 많이들 자가 격리해 보셨을 테지만 그때 저도 매우 외로웠습니다. 격리에는 게임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핸드폰 게임으로는 한계가 있더군요. 가져 간 책도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지루함을 친구들에게 푸념하니 다들 오히려 호텔에서 잘 쉬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더라구요... 이땐 격리의 공감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 외로웠습니다.

운동도 매일 열심히 했습니다. 끊었던 담배도 조금 피웠습니다. 나가서는 다시 피우지 않았습니다. 위스키도 한병 가져갔었고 룸서비스로 맥주를 주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술맛이 안나더군요. 제 간은 아주 좋은 회복기를 가졌습니다. 다만 제 뇌는 불안과 외로움에 힘들어했습니다.

군대 훈련소만큼이나 지루했던 2주(사실 더 긴 격리를 해야 한다는 걸 이때는 몰랐다...)가 지나가고 퇴실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전날 마지막 PCR 검사를 받았습니다. 도합 3번째 (앞으로 2년간 15번은 더 받게 됩니다) 검사를 마치고, 석방을 기다리는 수감자의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수십 명의 사람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양성 반응이 나오면 고루한 격리가 다시 7 일간 연장이 됩니다.

결과는 다행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양성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방을 탈출하자마자 남국의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 갔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탈옥을 하고 한밤에 비를 맞듯이 저도 푸른 바다에 누워 그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하노이로 가기 전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수년간 지냈던 호치민으로 갔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다가 사회주의 국가지만 그곳은 자유로웠습니다. 한국에서 코시국 초반에는 식당이나 술집도 다닐 수 있던 것처럼 저는 테니스도 할 수 있었고 수영장도 갈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와 호치민은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으로 남북의 기후가 상당히 다릅니다. 기후를 말할 때 우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남아 도시가 모두 항상 덥고 습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은 북아메리카의 오대호를 처음 보면 바다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한국처럼 산이 많은 도시를 본적이 잘 없습니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은 등산을 참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네팔에 가면 동네 뒷산도 설악산보다 험준합니다. 걸어 다니기도 숨찬 4천 미터 고지에서 그곳 아이들이 공놀이를 합니다. 우리가 휴가를 통해서 아는 동남아 날씨는 특정 지역에 특정시기의 날씨일 뿐입니다. 기후가 아닙니다.


'사이공'이라고도 불리는 남부 도시 '호치민'은 적도 기후에 속합니다. 연중 비슷한 온도지만 1~4월이 좀 더 건조하고 뜨겁습니다. 우기는 6~11월 정도이고 특정 시간에 소나기가 내립니다. 우기라고 더 습하고 덥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비가 내리고 나면 많이 시원해집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평야지대라서 덜 덥게 느껴집니다. 한국처럼 습하고 더운 여름은 그곳에 없습니다. 이런 온화한 기후에서는 비만 막아도 집이 됩니다. 한국 같은 사계절의 혹독한 날씨를 견뎌내는 집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여유롭고 온화합니다. 서구문화에 일찍 개방된 탓인지 외지인에게도 친절하고 어느 정도 자본주의 분위기도 납니다.


휴가지로 잘 알려진 중부지방 다낭과 나트랑(냐짱)은 서로 400km 넘게 떨어져 있어 각각의 기후가 다릅니다. 여러 번 가봤지만 1년 날씨를 다 겪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중부지방에는 태풍이 자주 지나가 주민들이 홍수의 피해를 많이 겪습니다. 민물이 많이 들어올 때쯤 바닷물 속 시야가 좋지 않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가기는 좋지 않다더군요. 남부에 가까운 냐짱(Nha Trang)은 2월에 무척 덥고 건조했습니다. '푸꾸옥' 섬의 바다보다 더 맑은 물을 볼 수 있었지만 다른 시즌에는 동해 물보다 훨씬 탁한 거 같습니다.

다낭을 한국 겨울 시즌에 가면 시원하다 못해 쌀쌀할 수도 있습니다. 근처엔 바나힐이라는 관광지가 있는데 고도가 높아 추울 수도 있습니다. 베트남 최 남동단 꼰다오섬 주변을 제외하면 다낭과 냐짱사이의 드넓은 바다가 제가 가본 베트남 지역 중에 제일 청명했습니다.


하노이에는 한국보다도 혹독한 여름이 있습니다. 습하기도 하지만 40도를 넘어가면 습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너무 더워서 습도인지 땀인지 알 수 없습니다. 40도가 넘어가면 밀림이 아니고서야 습하고 덥기란 어렵습니다. 왜 40도가 넘는 날씨를 가진 지역은 밀림보다 사막이 많은지 알 것 같습니다. 기온이 높을수록 습기는 빠르게 날아갑니다. 정말 더운 날에 아스팔트 도로에 계란이 익는 것도 봤습니다. 겨울엔 쌀쌀하고 습합니다. 하루 종일 안개가 낀듯한 느낌이 납니다. 하루 종일 섭시 12~15도 정도가 유지되며 일교차가 적습니다. 하노이보다 더 북부 '사파'로 가면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고산지대도 있습니다.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어가고 눈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치민의 고급 부동산은 대부분 하노이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즐길 줄 아는 호치민 사람들은 버는 대로 다 소비한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하지만 월맹, 월북의 승리로 끝난 전쟁에서 남부 자산가들의 재산은 대부분 몰수가 됐을 겁니다. 자국민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북부 하노이 사람들이 더 깐깐합니다. 자본주의 분위기도 월씬 더 적게 납니다. 베트남의 영웅이자 지도자 '호치민'의 본거지입니다. 베트남의 역사 문화의 중심입니다.


2020년, 1년 만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하노이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상은 역시 나에게 레몬을 던져 주더군요


대신 살아드립니다(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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