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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n 29. 2022

직장 인간관계

제로섬 게임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초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분이 있습니다.

역할에 따른 책임이 많이 증가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동기는 왜 그렇게 나대는지? 나에게 피해를 줍니다.

-나의 상사는 소시오패스 같습니다.

-회사에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이런 방식이 맞지 않는데 다들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내가 위와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이 즐비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한지는 약 20년 회사 생활한지도 약 10년이지만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의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저도 타인과 사회에 치여서 매우 스트레스받은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고 저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동의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역할이 생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기자라면 1. 기자의 역할 2. 직장인 팀원으로의 역할 3. 동기, 동료로서의 역할 4. 기타 다른 사회적 , 가족의 역할 등이 있다. 이 각각의 역할은 상호 호환적인 게 아니다. 배타적으로 하나의 사건과 행동이 한 역할에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역할에는 부정적 일수 있다. 

부장이 어떤 일을 시켰다. 기자로서 보면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직장인 팀원으로서는 동의하고 따라가 주는 게 맞을 수 있다. 다른 사건으로 당신이 기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부장이나 직장 동료에게 피해가 가는 일 일수 있다.   

착한 사람들 또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역할을 수행했을 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역할의 상호 배타적, 이율배반적 특성을 극복하려고 한다. 좋은 동료 좋은 상사 좋은 기자가 되려고 한다. 불가능한 거는 아니지만 많이 어렵다. 

그러므로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는 나의 감정을 최소한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건은 직장 밖이 더 좋다. 이익관계일 때는 타인과 잘 지내기가 어렵다. 소모임이나 동호회 활동을 하라.


직장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위와 같은 의견에 동의하고 그렇게 행동한 거 같습니다. 최근 이직한 회사에서 상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니 회사에서 이런 복장은 너무 자유로운 거 아니야? 이런 건 금요일만 입어야지", "물어본다니?! 그건 아랫사람한테나 하는 말이지. 여쭙는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후우... 스트레스를 받았았습니다.

이전 같으면 이런 직장 동료와는 감정의 교환을 최소화하고 일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기 대안이지 저에게 해결책이 이니였습니다. 저는 민감해서 직장상사와 불편하고 불만인 관계가 지속되면 결국은 나를 힘들게 합니다. 눌러 눌러 넣다 보면 결국 폭발하는 사고가 납니다. 이런 사고는 밖으로 타인을 향하여 폭발하는 게 아니라 내 안으로만 터지는 경우가 있어 아무도 모르게 나만 아픈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상사를 판단하고 그의 행동이 잘못됐으니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내가 얼마나 민감한지 모른다. 그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상당히 무심하다' 이렇게 판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건 필시 이유가 있습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을 겁니다. 나에게 말을 했지만 자신의 상황을 더 많이 고려했을 겁니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한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거고 자신의 감정을 위해 최선의 행동을 선택한 거입니다. 

내가 타인에 대해 판단을 할수록 타인과 갈등은 심해집니다. 그가 만약 나의 아버지였다면 나의 친구였다면, 같은 말 같은 어투로 나에게 말했더라도 내 마음이 똑같이 상했을까요? 내 성격에 반박했겠죠. 그래도 기분이 적게 상했을 겁니다. 그는 내가 가족이어서, 나를 걱정해서, 저런 말을 굳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내가 이렇게 이해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세대갈등이나 남녀 갈등도 다 이런 문제가 있을 겁니다. 가정하여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범죄자나 또는 살인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그와 밥을 먹고 친구로 지낼 겁니다. 그의 잘못을 보고 슬퍼할지언정 그의 범죄사실이나 형량을 부정하진 않을 겁니다.


위의 조언을 따라 직장 인간관계에서 감정을 최소화하는 것 만이 단기적 또는 장기적 해결책이 아닙니다. 이익관계일 때는 타인과 잘 지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 부정적으로 보고 실제로 더 부정적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실제 세상이 아니라 관념의 세계에 사는 겁니다. 내가 타인의 의견을 듣고 이게 타인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타인은 이렇겠지 추측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조지 R. R. 마틴의『얼음과 불의 노래 제2부, 왕들의 전쟁 1』에서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권력은 사람들이 그것이 있다고 믿는 곳에 있습니다. 그것이 정답이죠."

"그렇다면 권력이 무언극 배우의 속임수 같다는 거요?"

"벽의 그림자와 같은 거죠. 하지만 그 그림자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작은 남자도 아주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 수 있지요."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인터넷에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우화 하나가 떠돌고 있는데,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 어떤 노인이 손자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내면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두 마리 늑대의 처절한 싸움이다. 하나는 악이다. 분노에 차 있고 탐욕스러우며 질투가 심하고 교만하며 비겁하다. 다른 하나는 선이다. 평화롭고 타인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관대하며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 너의 내면에서도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잠시 뒤 손자가 "어느 쪽 늑대가 이기나요?"라고 묻자 노인은 미소 지으며 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지."  


기술의 발달로 SNS를 통하여 타인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지만 공감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몰려 살다 보니 타인들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대상으로 봅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 보니 감정적으로 멀어지려 합니다. 타인의 감정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 대상화하고 나의 감정에만 집중합니다. 

마치 자본주의 시장 경쟁을 하듯 제로섬 게임을 합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손해를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통하면 결국 남는 건 패자와 패자입니다. 이런 게임에서 진정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신승리가 최고의 승리입니다. 내가 부단히 노력해서 이루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도덕 철학자입니다. 그는 '국부론'의 저자 이기보다 '도덕감정론'의 저자로서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에 말에 따르면 도덕은 이성이 아니라 본성이며 감정입니다. 도덕이란 공감이며 이기심 또한 공감의 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부정 편향적으로 현실 세계를 부정적으로 보면 세계는 부정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변화한 세상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 그리고 이기심을 닮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도덕적이며 이기심 또한 공감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렇게 변화한 세상은 인간의 본성도 아닌 상상 속의 악 또는 괴물을 닮았습니다. 


결론은 내 직장 동료나 주변의 타인에게 공감하고 잘해주자입니다

물론 내가 너무 힘들면 도망치는 게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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