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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l 26. 2022

아이슬란드(2)

도로와 이끼

아이슬란드 전체를 이어주는 링로드를 타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도로가 2차로 밖에 안되고 갓길도 좁다. 한국의 2차로보다 여유가 없다. 타이트한 2차로여서 운전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의 수는 적어서 교통체증이 전혀 없다. 그래도 속도를 내기엔 도로가 좁고 위험하다. 도로경계선과 가드레일 사이가 너무 좁다. 가드레일 너머로 보이는 절벽이 천 길 낭떠러지다. 가는 길마다 웅장한 자연이 펼쳐지는데 자칫 한눈팔다가는 사고 나기 십상이다. 과속 벌금이 엄청 비싸다고 들었다. 이곳을 먼저 여행해본 친구가 알려줬었다. 자기는 한 30 만원 냈는데 100 만원이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눈도 많이 오는 여기 도로에서 역시 과속은 금물이다.


사방이 도시가 아닌 웅장한 자연이라서 그런지,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인지 도로 위에 작은 자갈들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자갈을 밟으면 차가 미끄러질 수도 있다. 또 위험한 건 그 자갈이 부서지거나 튀어서 총알처럼 날아간다는 것이다. 차 유리가 깨지기도 한다. 창문을 열고 있었다면... 아찔하다. 자동차 보험이 비용을 다 커버해주기는 하지만 내 안전은 돌봐주지는 않는다. 


결국 사고가 한번 일어났다.


며칠간 관광지를 둘러보며 링로드(일주도로)를 약 40% 주파했을 때쯤이었다. 회픈(Höfn)이라는 도시 근처, 주행 중에 내비게이션이 말썽이었다. 자꾸 알람이 떠서 화면의 지도가 보이지 않으니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매번 멈춰서 스크린 알람을 끄고 다시 출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2차로여서 새어 나갈 길도 잘 없는데, 이 여유로운 도로에서 왜 내비게이션을 보고 달렸을까 아쉬움이 든다. 주행 중 내비게이션에 뜬 알람을 끄느라 한눈 판 사이 가드레일 같은 막대기 사이드 미러가 부딪혀 깨졌다. 하필이면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깨졌다.


먼저 렌터카에 전화해서 사고 설명을 하고 수리를 물어봤다. 역시 수리는 힘들었고 대차 방법밖에 없었다. 문제는 새 차를 배달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미 절반가량을 돌았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다른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사이드미러의 유리만 떨어진 거니 유리를 어떻게 구해보고 나머지 반 바퀴를 돌아볼 요령이었다. 이케아 같은 가게에 들어가서 작은 거울을 구입해서 테이프로 붙여봤다.

거울의 곡률이 달라서 보이는 각이 전혀 달랐다. 어느 정도 광각이 나와야 시야가 확보될 텐데 거의 망원경 수준으로 시야가 좁았다. 그 보다 이 겨울 날씨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거울인 것을 깨달았다. 구매할 때까지는 실내라서 몰랐는데 막상 외부로 나와서 차에 매달아 보니 바로 성애와 습기에 보이는 게 전혀 없었다. 결국 돌아가야만 했다.

3~4일간 왔던 거리를 1~2일 만에 급하게 되돌아갔다. 결국 레이캬비크로 되돌아가는 길에서 과속 카메라에 찍히고 만다. 여행을 마치고 렌터카가 청구하기 전까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벌금이 5 만원 짜리였다. 90km/h 속도제한 도로에서 5km 과속한 95km/h로 달린 것이었다. 한국처럼 10% 정도 봐주지 않았다.  

연비가 좋은 원래 차를 반납하고 연비가 좋지 않은 한국 차로 바꿔 타야만 했다. 그리고 링로드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같은 길을 3번 지나치기는 싫어서였다. 


흘러가는 데로 여행해야 로드트립이다. 사고를 한번 내고 나서야 여유를 찾았다. 정해진 목적지 말고 가다 멈춰서 감탄하고 사진을 찍은 곳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2군데다.

화산섬이어서 그런지 한라산 백록담을 가는 길처럼 여기도 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라 부르기 조금 아쉬운 키 낮은 관목들은 좀 있었다. 하늘과 가깝고 돌과 빙하가 많이 보인다. 그래서 더욱 추워 보인다. 다만 활화산이 많아서인지 예상보다는 덜 춥다. 역시 이곳은 불과 얼음의 땅이다. 2010년엔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 구름 때문에 10만 여 편의 항공편이 취소된 적도 있다. 

이곳에서는 홍수가 가장 큰 재난 중 하나이다. 눈사태가 아니라 홍수다. 마을이 링로드를 따라 해안가에 형성되어 있다 보니 눈사태가 일어날만한 높은 산들은 근처에 없다. 대신 홍수는 다르다.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내륙 어딘가에서 화산이 터지면 용암과 지열로 인해 많은 양의 눈과 빙하가 녹아버리고 그 많은 물은 빠른 속도로 낮은 곳을 향하여 달려간다. 강이 아닌 골짜기로 흘러가 마을을 순식간에 덮칠 수도 있다. 벨 스릴러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잘 보여준다. 

 이 하얀 얼음과 검은 돌의 땅에서 갑자기 녹색 밭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서 누가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닐 텐데 이 녹색 양탄자가 끝도 없이 펼쳐 저 있었다. 차를 갓길에 대고 내려서 보니 이끼였다. 이곳엔 태양이 강하지 않나 보다. 항상 구름으로 덮여있는 날이 많나 보다. 이렇게 넓은 이끼 밭은 난생처음 보았다. 도톰하니 두께도 10cm 이상 되었다. 텔레토비 동산 같기도 하고 녹색 바위로 이루어진 행성 같기도 했다. 수백만년 동안 이 모습을 간직했을 것이다. 여긴 참 오랜 된 것이 많다. 여기 빙하, 화산, 이끼들은 인류보다 오래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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