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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l 22. 2022

베트남에서 취업하기(2)

세 번째 면접은 싱가포르 회사였다. 면접 가기 전 홈페이지 둘러보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싱가포르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 어떠니? 이 회사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니? 회사의 규모매우 컸다. 여기 호찌민뿐만 아니라 하노이에도 오피스가 있었고 세계 각지에 지사도 많았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3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1명은 싱가포르인 매니저 2명은 베트남인 매니저였다. 인터뷰는 싱가포르 메니져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베트남 메니져의 영어뛰어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있었다. 회사 소개는 따로 없었고 자기소개와 질문으로 이어져갔다. 싱가포르 메니져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고 나에게 하나 요구했다. 내가 준비한 포트폴리오는 학생 때 포트폴리오이고 상세 기술 이력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최종 결재를 받기 위해선 그런 기술 이력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주 이내에 가볍게 만들어보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이틀간 폴리오를 새로 만들었다. 간단하게 만든 이 포트폴리오는 나중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메일을 보내고 며칠 후 인사팀장과 면접을 한번 더 보게 되었다. 시험이라기보다는 계약 사항에 대한 조건 합의였다. 다행히 주 5일이었다. 연차 20일 병가 6일도 좋은 조건이었다. 수습 격인  labor contract 6개월이고 향후 2년 계약을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월급은 한국에서 받던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현지 저렴한 물가가 고려한다면 오히려 좋은 조건일 수도 있다. 약 1달 정도의 긴 휴가가 매력적이었다. 집과의 거리도 매우 가깝다. 오토바이 타고 5분  주변에 한국인 식당도 많았다. 음 난 역시 될 놈이다. 무작정 건너온 베트남에서 드디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3개월 만에 직장을 구했다!


출근을 하고 옆자리의 동료와 인사도 하고 어영부영 첫날을 보냈다. 회사는 사이공강에 면해 있어서 멋진 리버뷰를 항상 볼 수 있었다. 한상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나에게는 정말 좋은 자리였다. 비 오는 날 어떻게 하늘이 변하는지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우르릉 쾅쾅 억수같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상당히 다이내믹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폰 카메라를 꺼내어 찍으니 너희 나라에선 비가 안 오냐고 동료가 물어본다. 하하... 비가 오긴 하는데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오진 않는다고 대답했다. 한국 홍우 경보 수준의 비가 매일 내리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회사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직원이 많다. 소형 주택 건물의 오피스 건 대형 오피스 건물이건 상관없다. 여기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지만 영 깨끗하진 못하다. 아직 입식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 인가? 더운 나라 이기 때문인가?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일하는 복장 또한 한국과 조금 다르다. 신발부터 다르다. 물론 외국에서 온 회사이거나 외국인을 대하는 일이 없는 현지 회사 기준이다. 직장인들이 샌들을 신는다. 옷은 셔츠나 정장 신발은 샌들이다. 그런 패션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서도 나이 많은 중년의 아저씨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회사에서 맨말로 다니는 걸로 봤을 때 한국과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외국회사라서 달랐지만 현지 회사는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는 곳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다 보니 운동회 때 입었던 단체복을 회사에서도 입곤 한다. 국제학교 선생님들도 유니폼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직원들은 유니폼을 거부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하는 행사도 참 많다. 운동회, 설날, 송년회, 단체여행 등 여기서 동료란 것은 서로는 돈 벌려고 만난 사이 그 이상이다. 직원들은 이런 회사 행사를 참 좋아한다.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싫어하는 게 한국에서 당연하고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여긴 다른다. 태도가 달라 보인다. 왜일까? 내가 왜 직장을 다니나? 노동의 이유에 대해서 사유하도록 만든다.   


업무 강도로 비교해본다면 이곳이 한국보다 매우 매우 여유로운 편이다. 아마 사회주의 국가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특징 때문일 것이다. 노동법(근로법)이 강력하다. 야근은 극히 드물며 야근 시에는 특근비 또는 그에 상응하는 휴가가 주어지기는데 거의 신청해보지 못했다. 외부 미팅을 가서 다른 회사를 보더라도 사장과 실무자의 태도나 자세가 아주 평등하다. 봉건주의 사회도 아니고 업무 관계에서 수평적인 것이 당연한 것인데 역시 자본과 권력은 사회적 계급을 만드나 보다. 이곳이라고 사회적 계급이 없겠냐만은 한국보다는 더 평평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돈과 권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더 중요시되고 서로 끊임없이 비교하지만 이곳은 무엇보다 나이를 우선시하는 것 같았다. 첫 출근날 동료들은 나의 이름과 나이부터 물어보었다. 이곳에서는 나이 관계에 따라서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적고에 따라서 불리는 호칭이 달라진다. 한국에서도 '(이름)형, 누나, 언니'라고 호명하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회사에서 나의 정체성은 직급이나 지위가 된다.   


나의 첫 프로젝트는 아파트 단지였다. 이미 많은 부분 진행되어있었고 난 뒤이어 합류하게 되었다. 한국의 아파트와는 많이 다르고 미주나 유럽 아파트와도 모습이 많이 다르다. 싱가포르나 태국과 비교했을 때 그나마 가장 비슷해 보인다. 환기나 통풍이 중요하고 보온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개별호수 사이가 개방되어 있다. 평면으로 보자면 사각형 중간중간을 잘라 틈을 많이 만든 모양새다. 산이 없고 대부분이 평지인 여기엔 바람이 많이 분다. 고층 아파트에 있으면 더운 날씨에도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 에어컨을 딱히 틀 필요가 없다.


나의 보스 '벤' 싱가포리안 매니저는 하노이와 다낭 지사를 총괄하고 이곳 호찌민에서는 건축 본부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관리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내가 업무적으로 지시를 받거나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다른 싱가포리안 한 명은 이곳 지사장인 제이미였다. 다른 층이라 만날 일이 더욱 없으며 연례행사 때나 마주쳤다. 나는 거의 베트남 로컬 회사를 다니는 것과 같았다. 업무 초반 몇 개월은 나의 생각이 그들에겐 신선한 변화라서 재밌게 진행이 되었다. 고객사에서 한마디도 알아듣기 힘든 회의를 진행을 했지만 통역이 있어 도움이 되었다.

업무강도는 상당히 약한 편이나 서구 회사 문화와 비슷하게 자율적인 노력으로 업무성과를 내야 한다. 나는 직속상관이 없는 독자적인 선임 건축가의 역할을 맡았다. 각 팀의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기보단 구원투수같이 지원해주는 일을 주로 했다.

내가 직접 팀을 관리하고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것을 원했지만 언어적인 한계와 능력의 한계로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기란 어려웠다. 언어적인 한계로 고객사 관리 부분이 많이 어려웠다. 회사를 칼퇴하고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이 만족스러운 일상이었다. 뉴욕에서 근무할 때는 내 생일날에도 새벽까지 철야작업을 했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었다. 마감시간에 쫓기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더 드물었다. 이곳에 와서야 워라벨을 보장받았다


베트남에서 취업하기(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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