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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l 25. 2022

베트남에서 취업하기(3)


‘Pass the buck’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양동이를 옆사람에게 넘긴다'는 말인데 '책임을 미루다'정도로 해석된다. 한국에 있을 때 구청이나 관청에 전화를 하면 자꾸 이 부서 저부 서로 담당자를 돌리고 막상 담당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이제는 이런 경우를 덜 보긴 한다. 한편 요즘엔 온라인 대기업(주로 예약사이트)의 고객 서비스팀과 통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마음 편히 먹고 이메일을 쓰던가 문제를 잊어버리는 게 속편 한 거 같다. 여기 회사나 공무원 사회에도 이런 문화가 있고 이런 일을 격으면 상당히 당황스럽고 짜증이 난다. 회사 직원에게 일을 부탁하면 뭔가 처리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비난하기도 한다 "역시 이곳 사람들이 한국인보다는 게으르고 일을 잘 못해".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그건 그 한국인의 입장에서 평가한 것이고 현지의 일반적인 평가는 다를 것이다. 미루는 듯 천천히 하는 게 미덕인 이곳 문화 역시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추측된다.


여기 사람들과 사회는 식량배급과 같이 어떠한 이를 하더라도 동등한 배급을 받게 되는 공산주의 시스템을 경험해 봤다. 나서서 책임지고 일처리를 하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 또는 '뒤로 다른 생각을 하는 알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질 수가 있다. 자본주의나 시장 경쟁 논리로 본다면 일처리 잘하고 빠른 사람은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반해 같은 것을 보고 정반대의 판단하는 결과가 나온다.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가 자리 잡고, 전쟁이 끝나고, 이후 경제부분만 중국처럼 시장경제 체재를 택한 것이 불과 몇십 년 되지 않았다. 지금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다. 시스템은 한 개의 버튼을 켠 듯 급격하게 바뀌었지만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은 빨리 변화하지 못한다. 천천히 변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적게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나의 근무 태도와 능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현지 직원들은 오침을 한다. 점심시간 정말 아무 데서나 누워 잔다. 책상 밑, 통로, 비상구 가리지 않는다. 숙면을 위한 돗자리, 베개, 안대가 상비되어있다. 준비되지 않는 친구들만 의자에 기대 어잔다. 길거리 오토바이 택시기사들도 바이크 위에서 누워 잔다. 잔디밭을 찾아서 눕는 게 어려운가 보다... 12시부터 1시 반까지 넉넉히 90분 정도를 점심시간으로 가지는 회사가 많다. 30분간 점심을 먹고 1시간가량을 잔다. 나도 처음엔 자려고 해 봤는데 의자에서 자는 건 너무 불편했다. 차라리 점심시간 30분으로 퇴근을 1시간 빨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열대 기후에 있는 여러 나라들은 아직 씨에스타를 하는 거 같다. 없어지만 안될 좋은 문화이다.


동남아 국가나 중국에는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한 노동집약적 산업인 제조업 회사들이 많다. 여기도 해외 자본으로 만든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다. 여러 나라 중 대만, 일본, 중국, 한국 회사들이 세운 공장들이 많이 비율을 차지한다. 하지만 여러 회사들은 자동차 회사들처럼 생산을 위한 공장을 직접 설립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의류 브랜드를 소유한 판매사이다. 현대차처럼 제조와 판매를 같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제조업에서는 따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공장에서 한 가지 브랜드의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규모의 경제로 봤을 때 불리하니 여러 제품을 생산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보다는 소품 중 대량 생산 비용이 저렴하다. 한 공장은 주로 한 가지 부품만을 주로 생산한다. 여러 종류의 신발(운동화, 등산화, 구두 등)에 들어가는 한 종류의 부품만 만든다. 신발끈을 만드는 회사, 외피를 만드는 회사, 신발 바닥에 들어가는 인솔 아웃솔만을 만드는 회사, 그리고 최종 완제품을 조립 완성하는 회사 등 다양하다. 그리고 각 공정에 들어가는 재료를 납품하는 화학 제품 회사, 직물회사, 금속회사도 있고, 공정에 들어가는 기계 또는 부품을 제공 및 관리하는 회사도 있다. 브랜드 신발일 경우 브랜드를 소유하고 판매하는 회사가 한 제조사에게 의뢰를 하면 그 제조사는 위와 같은 공장과 하청을 이용해 최종 완제품을 만들어 의뢰자인 브랜드社에게 납품한다. 그 제조사는 한 브래드에게만 납품하는 게 아니라 여러 브랜드에게 다양한 제품 제조를 위탁받을 수 있다.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베트남에서도 큰 공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 제조기업이 만드는 옷이 미국 의류의 30프로를 차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름도 잘 몰랐던 중소기업인 줄만 알았던 그 제조기업이 사실 이 세계에서는 매우 큰 대기업이었다. 직원들의 월급 수준이나 기업 오너의 재력 수준 또한 이미 상장된 한국의 대기업 수준을 넘어선다. 이런 회사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자동차 부품 제조사, 화학제품 제조사, 의류봉제회사 등 제조업체들의 경제적 규모나 공장의 물리적 규모는 매우 크다. 한 회사 공장의 크기가 거의 마을 사이즈다. 공장 대지의 한쪽 면이 수 km에 이른다. 우리가 매일 입고 쓰고 사서 쓰는 제품들 중 공장에서 만들지 않는 제품은 거의 없다. 아이폰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애플이 아니다. 애플은 브랜드이며 제품을 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이다.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 세계 곳곳으로 수출된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직종은 정말 다양하다. IT 개발자, 회계사, 변호사, 의류 제조사, 가방 제조사, 파일럿, 군인, 물류회사, 투자회사, 무역회사, 은행원 등.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직업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곳에서 그런 욕구를 잘 채워주는 것 같다. 그들을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은 넓어졌고 귀는 더 밝아졌다.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재밌고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지만. 일상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이곳 제조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주는 신발이나 가방 샘플 제품을 선물로 받으면 매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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