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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l 28. 2022

아이슬란드(3)

영화 같은 곳

<인터스텔라 >

나머지 한 군데도 여기가 어떤 관광지라는 이정표나 표시판이 없었다. 도로를 달리다 20대가량의 차가 주차된 것을 보니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구글 지도를 찾아봐도 아무 표시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차를 멈추고 둘러보지만 어디가 관광지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주위엔 허허벌판뿐이었다. 한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몇 명의 사람을 발견하고는 물어봤다

"나도 몰라 그냥 따라가 보는 거야" 

나와 비슷한 처지의 관광객들이었다. 그렇다면 걸어서 돌아오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터였다. 한참을 걸어가다 돌아오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가다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돌아왔어"

"?!"아까보다 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눈에 보이는 건 땅과 하늘 그리고 그 경계, 수평선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 몇 명이 이 전부였다.

사실 길이라고 부르기도 살짝 애매하다. 현무암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황무지다. 어두운 회색 사막에 가깝다. 비가 내려서 더욱 검게 보인다.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사람을 점으로 보면 그 점을 잇는 발자국 같은 흔적(자갈에 나있는 흔적이라 자세히 살펴봐야 인위적인 모양인) 정도가 이게 길이라는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약 3~40분 동안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호기심이 의심으로 바뀔 때쯤, 우박이 내렸다. 점퍼에 모자가 안 달려 있었으면 낭패 볼뻔했다. 강한 바람을 타고 얼음 알갱이가 세차게 날아와 얼굴에 처박히니 '아이슬란드!'를 실감할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있는 산에만 얼음(빙하)이 있는 게 아니었다. 검은 모래의 땅은 순식간에 하얀 모래의 땅으로 바뀌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에 나오는 다른 행성 같았다. 나에게도 핼맷이 있었다면 매튜 매커너히처럼 쓰고 걸었을 것이다. 저 멀리 형체가 보였다. 형체를 보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사고 현장이었다. 비행기 잔해가 넓러 저 있었다. 날개는 사라진 지 오래되어 보였고 몸통도 듬성듬성 남아있었다. 더욱더 '인터스텔라'같은 광경이었다. 다행히 이 군용기 추락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전해 들었다. 이 잔해를 치우지 않은 미국과, 이걸 그대로 방치한 아이슬란드와, 여길 관광지로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 이상하게 느껴졌다. 편도 4Km 왕복 8km를 걸었다. 로드트립에 어울릴만한 목적지였고 찾아간 방법 또한 로드트립에 적합했다. 


<프로메테우스>

난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우주가 배경인 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를 좋아한다. 이 영화엔 우주, 창조자(인간을 만든), 에일리언(괴물)등이 등장한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철학적인 물음을 가지고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 밖 우리는 인간은 '진화의 결과' 또는 '신의 작품'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한편 영화에서는 인간을 만든 창조자가 따로 있다고 보여준다. 그 창조자는 인간을 닮은 외계인이다. 아니 인간이 그 외계인을 닮은 것이다. 

그 창조자는 모종의 이유로 전투용 에일리언(괴물)이 필요했고 에일리언을 만들려면 창조자의 몸이 희생(에일리언은 몸을 찢고 태어난다)되어야 했다. 그래서 창조자는 Dummy(마네킹)용으로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즉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고 대량으로 희생시켜 에일리언을 수확할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존재 목적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보여준다. 

자신을 닮은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려면 우선 창조자의 유전정보를 담은 씨앗(인간이 탄생할 수 있는)을 뿌려야 된다. 그래서 영화의 첫 장면으로 그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배경으로 거대한 폭포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 장면을 봤을 땐 창조자가 외계인인지 인간인지 혼동스러웠고 그 폭포가 지구의 것인지 타 행성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감독은 아마 원시상태의 지구를 연출하려고 한 것 같다.

그 폭포가 바로 이곳 '데티포스'에서 촬영되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CG가 아니었다. 눈과 검은 현무암으로 덮인 광활한 황무지 이곳에서 우주선이 등장하거나 외계인이 나타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가 않았다. 괴물 같은 폭포수가 넘쳐흐른다. 압도적인 지구의 힘은 경외감을 넘어서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공포는 자연재해를 경험해 본 생물이 가지는 본능 같다.   

 

<빙하>

이곳의 관광물가는 비싸다. 반나절 진행하는 투어도 200달러부터 시작한다. 나의 사랑 흰 수염고래를 보러 가는 투어도 있었지만 만날 확률이 희박하다. 빙하 트래킹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와 투어차량이 엄청 거대했다. 가이드가 흥미로운 점은 그는 내가 좋아하는 HBO 드라마'왕좌의 게임'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다는 것이다. 북쪽 지방의 야만인 '와일들링'역할이었다. 190cm가 훌쩍 넘는 키는 2m에 가까워 보였다. 그 드라마 메인 촬영 장소중 하나가 이곳이라서 많은 엑스트라를 이곳에서 차출했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대하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드라마화한 것인데 그 소설의 제목이 얼음과 불의 노래(A Song of Ice and Fire)다. 아이슬란드가 메인 촬영지 일수밖에 없다. 그렇다 여기 배경에서는 용이 아닌 드래건이 꼭 나올 것만 같다. 

거대한 와일들링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트럭 같은 버스에 탑승했다. 이 트럭의 바퀴가 내 키만 했다. 도로를 벗어나서는 바퀴의 공기를 빼더니 조금 평평해진 바퀴를 만들어서 진짜 오프로드 주행 스킬을 보여주었다. 높은 경사의 구덩이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편리하게 빙하까지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하차 후 아이젠을 신고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빙하가 아니라 까만 현무암 산인 줄 알았다. '빙하' 말 그대로 얼음으로 된 강이기 때문에 저 멀리 산이 보이긴 했지만 내가 걷는 곳은 산등성이가 아닌 골짜기 아래임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강이나 계곡의 물이 항상 맑지는 않다. 비가 온 다음날 또는 하류로 갈수록 강물에 흙이 많이 섞이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곱고 작은 입자의 흙이 물에 녹아서 한강물이 마치 커피색이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곳 모래는 까만색 현무암이다. 까만 강이 흐른다. 그래서 까만 빙하를 볼 수가 있다. 까만 얼음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까만 얼음은 까만색 옥처럼, 보석처럼 반짝인다. 

까만 빙하를 지나 더 높이 올라가면 예상했던 하얗고 푸른 청명한 빙하가 나온다. 주상절리에 육각형 모양으로 결절이 생기듯 빙하도 특유의 패턴이 있다. 부드러운 계란판 같은 모양이다. 

빙하 위에서 흐르는 물이 있다. 빙산 위에서부터 물이 녹아 흘러가는 길, 차가운 계곡이 있다. 이 계곡은 3차원으로 흐른다. 일반적인 강처럼 땅 위를 흐르지 않는다. 땅은 녹지 않으니 지하수가 흐르는 것을 눈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계곡은 블랙홀처럼 빙하 속으로도 들어갔다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계곡이나 강에서 물에 빠지면 어디로 갈지 예상이라도 될 텐데 이 계곡은 나를 빙하 속으로 데려갈 것만 같다. 물을 한번 먼저 보고는 그 차가운 온도에 다시 한번 더 놀랬다. 말 그대로 얼음물이다. 물맛은 좋았다.

여긴 무엇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다. '인터스텔라'에 나온 얼음 행성을 가상 체험하고 싶다면 빙하 트레킹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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