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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Aug 22. 2023

도망가자

혼자서 하는 여행은 꽤나 괜찮다.

"남편이랑 싸웠어?"

"왜 혼자 여행을 가지?"

요즘 젊은 청춘들은 혼자 여행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40대 중반이 넘은 엄마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것 같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놀리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하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가 편한 나

어느 가을날, 나는 나의 몇 번째인지도 헷갈리는 생일을 제주도에서 혼자 보내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그냥 해보고 싶었다. 코로나로 해외를 나갈 수는 없으니, 최상의 선택지는 '제주도'였다.

코로나로 집에서 줌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와 종일 붙어있는 것도 힘들었고, 굳이 내가 해주는 밥 아니어도 배달로 충분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며칠 내가 없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사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어보고 싶었다.

걷고 싶어서 운전은 하지 않기로 했고, 일정도 계획하지 않았다. 


걷다가 만나는 것들을 담고 싶어서, 오랜만에 사진기를 챙겼다.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순간, 아주 몇 초간 멍했다. 

하지만 금방 제주도의 하늘과 바람, 습도가 나의 감각을 깨워주었다.


오롯이 혼자인 나, 마냥 그게 좋았다.


혼자 여행이니 좋고 넓은 호텔은 필요가 없어, 제주 성산 쪽으로 숙소를 결정했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가 아닌 중간쯤 내려서 걷다가, 자전거 대여해 주는 곳을 발견했다.

제주의 가을바람을 느끼며 자전걸로 달렸다. 순간 내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유채꽃이 만발했던 성산

그게 무슨 감사할 일인가 싶겠지만, 나는 자전거를 혼자서 배워서 탔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집에는 아빠의 자전거가 한대 있었다. 아빠의 자전거를 끌고 학교 운동장에 갔다. 140cm도 안 되는 키가 작은 여자아이가 성인의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안장에 앉았을 때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았다.

그건 둘째치고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서 출발도 할 수도 없었다. 수십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를 반복하면서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물론, 앉아서 타는 게 아니라 서서 탈 수 있었다.

그때 무릎이 까져서 남은 상처가 선명하게 흉터로 남아져 있다. 


생각해 보니 기특하다. 

자전거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서웠을 테고, 두려웠을 텐데 혼자서 도전한 어린 날의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도와달라고 말할 사람도 없었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는 걸, 혼자 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는 게 안쓰럽기도 하다.


자전거 도로를 달리면서, 유채꽃이 만발한 지평선과 멀리 너머에 반짝이는 바다의 수평선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벅찬 행복이었다. 아무도 없지만, 나는 혼자이지만 행복했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되는 순간이었고, 이제서라도 나에게 와준 이 시간이 고마웠다.

순전히 나에게만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찰나가 좋았던 것 같다. 

날아가는 새들이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혼자라서 괜찮아





Create your rest


숙소를 예약하면서, 밤에 오름 정상에서 별을 보는 activity program을 보고 예약을 했다.

차를 렌트하지도 않았고, 혼자서 밤에 오름을 올라가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므로,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되어서 나가보려고 하니 망설여지긴 했다.

젊은 청춘들이 혼자 온 아줌마를 보면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조용히 모자를 눌러쓰고 모임장소로 갔는데, 8~10명의 대부분이 혼자 여행 온 남녀 청춘들이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잘한 선택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차 안에서도, 오름에 올라가는 길에도 청춘들은 거의 대화가 없었다.

해는 어둑어둑 지기 시작했고, 억새들이 바람에 쓰러졌다 일어났다 하는 사각사각 소리만 들릴 뿐이었는데. 나는 혼자서 왜 그렇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던지... 

너무 심각하고 비장한 표정들의 청춘들을 보자니,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아무튼 웃음이 나왔다.


오름의 가을 억새


고작 이십 대인데 삶의 무언가를 고민을 한다는 것, 그들에게 있는 '자아'가 부러웠다.

사십 대가 끝나가는 아줌마는 아직도 '자아 찾기' 놀이에 빠져있는데 말이다. 

나의 이십 대는 아무 생각 없이 술집과 클럽에서 매일이 혼수상태였로 보냈었는데, 

자신을 고민하려고 여기에 모인 청춘들이 정말로 부러웠다.

오름의 정상에서 인솔하는 PD(캠프에서 부르는 호칭)는 따듯한 차를 한잔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고 선우정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도망가자



음악에는 역시 힘이 있다. 

자연스럽게도 한 사람씩 여기 왜 혼자 오게 된 건지 떨리는 목소리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제대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직은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별을 했는데, 휴학을 했는데...

그 와중에도 여전히 나는 혼자 웃고 있었다. 엄마의 미소였다.


청춘들이 너무 귀여웠고, 존경스러웠다.

나의 차례가 되어, 나는 청춘들에게 고맙다고 진정으로 부럽다고 말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그대들의 앞날은 분명히 다른 깊이와 너비로 채워질 테니,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세요" 나 또한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오름 정상에서 별을 기다리면서 청춘들과 한 장


다음 날, 생일날 아침에 나는 바닷가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 들고 뜨는 해를 만났다.

내가 태어난 날이면서, 아들이 아닌 또 딸이라서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실망하신 날이기도 했다.

매일 뜨는 해가 특별할 것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다.


그냥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

혼자여도 괜찮고, 

혼자라서 괜찮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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