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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제이 성훈 Nov 14. 2019

네 마음대로, 보인다


빨간 선글라스를 쓴, 황소처럼 살았습니다.
온통 달려 들어야 할 적들 뿐이었어요.

중학교 1학년 점심시간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다가, 시비가 붙었습니다.

형광(가명)이라는 친구가 제 얼굴로 공을 던졌고,

공은 피했지만 그 뒤 주먹이 입으로 꽂혔습니다 

'빡' 

치아가 부러졌고, 일이 커져서
경찰서까지 갔습니다. 

20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왜 싸우게 됐는지요. 

하이파이브와 [    ] 때문이었습니다.

형광이는 좋은 아파트에 살았고, 잘 생겼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 놀았어요.

싸움이 있기 2주 전쯤에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요. 

그전에도 함께 농구를 한 적이 있어서 
형광이가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건넸어요.

하지만 저는 무시하고 지나갔어요.
얼마나 무안하고 자존심 상했을까요.

분노가 자라기에 충분했겠죠.

작은 말에 상처받아본 적 있으세요?
저는 상처 주는 분야에 전문가였어요.

한국 힙합 프리스타일 랩 '배틀'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포함됩니다. 

그만큼 날이 선 말들을 잘하는 거죠.
저에게 디스 랩을 해보자면

'술제이 왜 또 나와. 생긴 건 구토 나와. 
배틀을 붙으면 네 인생 반 토막 나. 얼른 도망가.'

이렇게 아픈 말들을 뱉었습니다.
평소에도 그러니 인간 관계가 최악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불편해하는 게 느껴져서 
성격을 고쳐보려고도 했습니다. 

우울증까지 왔거든요. 
누군가가 공격하리라는 피해 망상도요.

그래도 이게 힙합이고, '나'라고 믿었어요.

근데 저와 반대로 살아온 친구가 있더라고요.
랩을 배우러 온 윤회(가명)라는 학생입니다. 

'박서'라는 배틀 프로그램에서 본
칭찬 배틀이 너무 좋았대요. (샷아웃 울티마)

그리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 행복했대요.
친한 형들이나 사업을 하는 분들께, 
기회가 될 때마다 칭찬 랩을 해줬다고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민호 형에게 랩을 해보자면

'이 미로 같은 삶 속에서 만났지. 이민호. 
그는 내 삶에 지도. 제이라이프스쿨의 리더.
갖고 있지 실력과 함께 겸손의 미덕.
모두가 그의 성공을 기원하고 믿어.'

그러면 형들이 기분 좋게 본인을 더 챙기고, 
사업 관련 정보나 일거리를 줬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차도 사고, 집도 사고, 
부모님 펜션도 지어드리고, 
본인 사업도 잘 꾸려가고 있었어요.

그때 자극을 받아 제 마음을 고쳐먹었냐고요?

아닙니다. 

그전에도 이미 <카네기 인간관계론>,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등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며칠 안 가더라고요. 
본질이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계속 랩을 통해 울분을 표출했고, 
화가 빠져나간 자리에 아주 조금씩 조금씩
다른 감정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어요.

그쯤 심리 상담과 명상을 통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외면하지 말고 내면을 봐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형광이에게 가졌던
[열등감]이 보였습니다. 

랩 배틀을 통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이 보였습니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부당하게 겪었던
[슬픔]이 보였습니다.

조금씩 제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괜찮다. 다 사라진 일들이다. 모두 귀한 존재다.'

제 자신과 화해하니까 그제서야 
상대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겠더라고요.

빨간 선글라스를 낀 황소가 아니라,
그리워하던 주인을 만난 웰시코기가 됐습니다.

매 순간 감사하고 축복하려 합니다. 

여전히 송곳 같은 생각들이 저를 찌릅니다.
그래서 마음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합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효과는 엄청납니다.
(해보실?)

심호흡을 하고요. 
감사, 축복할 일들을 떠올립니다. 

하이파이브를 건네준 형광이에게 고맙습니다. 
축복의 위대함을 알려준 윤회에게 고맙습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늘 평화롭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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