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카르
이른 아침,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난다.
거친 도로. 오토바이의 덜컹거림. 며칠째 계속되는 이동. 나는 어지러움과 구역질과 싸워야 했다. 패트가 약을 건넸고, 나는 진통제를 먹고 들판을 거닐었다. 다시는 오토바이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토바이 여행은 언젠가 보았던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오토바이는 차에 비해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에 늘 아침 7시 전에 출발해야 해가 지기 전에 다음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또한 해가 내리쬐는 여름에 그늘 없는 바깥에 하루 종일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매우 지쳤다. 차의 매연, 길의 흙먼지를 고스란히 들이키는 것도 힘들었고, 더운 날씨에 가죽재킷을 입고 헬멧을 써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가 목표로 했던 사막에 닿기 위해서 끊임없이 짐을 싸야 하는 것이었다. 기차로는 하루면 닿을 곳인데, 오토바이로 다녀오려면 계획한 한 달이 빠듯하기만 했다. 한 마을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짐을 싸야 했고, 때로는 짐을 풀지도 않은 채로 잠을 자고 나섰다.
여행을 가서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옮겨가는 여행이 괴롭게만 느껴졌다.
오토바이 여행의 또 다른 단점은 지나치게 서로에게 의지를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싸우면 자리라도 옮길 수 있을 테고, 기차에서 싸우면 발을 쿵쿵 구르면서 다음 역에서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토바이로 여행하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하나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있었고, 어디로 갈지 언제 출발할지 어디에서 길을 틀지 어디에서 멈출지 어디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어디에서 화장실에 들를지 모든 문제를 함께 결정해야 했다.
그날도 결국 돌아갈 곳이 패트의 오토바이밖에 없었던 나는 헬멧에 눌린 머리를 한번 흔들고 진통제를 하나 더 삼켰다. 쓴맛이 목을 타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들판을 얼마 거닐다가 주저앉듯이 바닥에 앉았다.
들판에는 양을 치는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모세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멀리서 모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와 나는 만나지도, 어떤 교감을 나누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그저 그를 지나갈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길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인도의 번화가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들판을 나는 가로지른다. 그 가로지름의 속도가 나를 어지럽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세와 그의 양 떼를, 그리고 나를 응시하는 당나귀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름다움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상심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흘려보내는 것과 또 다른 것이다. 그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나는 고대 이스라엘의 들판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패트가 기다리는 오토바이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길을 통과한다.
흙먼지 가운데로 염소를 모는 여자. 초록빛과 노란빛이 섞인 날개를 가진 작은 새. 엉덩이를 까고 밭에 앉은 사람들. 끝없이 펼쳐지는 노란 꽃밭.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 꿈속에서 보았던 것 같은 나무. 손을 흔드는 아이들. 동이를 이고 지나가는 여인들.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나치는 수백 마리의 소떼. 벌판.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지 속을 여행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그 모든 아름다움을 통과해 나아간다.
길 한편에 나타난 금발의 여행객을 발견하고 우리는 동시에 “Toutist!”라고 외쳤다. 이제 푸쉬카르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푸쉬카르를 중간 거점으로 계획을 세웠었다. 푸쉬카르에서 짐을 풀고 며칠 쉴 생각을 하니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을은 과연 관광도시답게 레스토랑에는 온갖 종류의 음식이 있었고, 우리는 배부르게 먹었다. 한국인 여행객들도 심심치 않게 만났다. 상점의 주인이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기도 했다. 나는 화려한 문양의 원피스를 하나 사서 길의 흙먼지가 달라붙은 청바지를 벗어던지고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숙소 마당에서는 이탈리아 부부의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옷감 전체에 반짝이는 보석을 박아 넣은 붉은 사리를 입은 신부가 하늘하늘한 천이 드리운 막사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금장식이 된 옷을 입은 신랑이 코끼리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둘이 나란히 앉자 터번을 두른 심각한 표정의 인도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Don't go out without him. Don't spend too much money without him.”
남자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면 옆에 있는 사람을 놓치게 된다는 듯이 이방인 부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하다가 남자의 말이 끝나면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그렇게 혼인이 성립되고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얼굴이 검고 아름다운 무희들이 손목과 발목에 작은 종을 잔뜩 달고 빙글빙글 돌았다. 결혼을 축복하는 폭죽이 터지고, 한껏 퍼진 치마가 불꽃처럼 반짝거렸다. 곧이어 빨간 터번을 쓴 얼굴이 검은 남자가 불을 삼키고는 아무렇지 않게 공중제비를 돌았다.
칫솔을 물고 마당에 서서 결혼식을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패트가 말했다.
“만약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여기서 하자.”
“내일 밤이 좋겠네.”
“그래, 그러자.”
어떤 농담도 가능한 밤이었다.
“Don't spend too much money without me.”
내 말에 패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Don't go out by yourself.”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말은, 그때 그것이 정말로 농담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사귀는 사이조차 아니었다. 그저 여행을 같이 하는 좋은 친구였다. 여행이 끝나면 헤어질 친구.
그러니 정말로 결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완전한 농담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말. 어쩌면 그래서 이루어지게 된 말.
다음 날 저녁. 일몰을 보기 위해 호수로 향했다.
호수 앞의 카페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고, 우리는 가트를 향해 내려갔다.
가트에는 엉망인 머리를 하고 인도 옷을 걸친 채 요가를 하면서 지는 해의 정기를 받으려는 히피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와, 북을 치는 인도인과, 그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녹색 인도 옷을 입은 금발의 여자가 있었다.
석양이 사라지고 해가 완전히 저물고 깜깜해졌을 때 따로따로 앉아 있던 히피들이 모여 앉아 잼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기타를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우린 신발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서 서로의 맨발을 보고 있었다.
까만 호수에는 그 호수를 찾아서 모여든 사람들이 밝히는 푸른 호텔들의 불빛이 스며들고 있었고, 바이올린 선율이 가느다랗게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우리가 지나쳐왔고, 지나쳐갈 길들이 고요한 호수로부터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일 또다시 오토바이에 올라 마주할 그 모든 길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