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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 Dec 30. 2018

손가락 사이의 카르마

아즈메

산을 넘어서 무슬림의 도시 아즈메로 향했다.

가장 먼저 호수를 찾았다. 영국인이 만든 인공호수로 만든 이의 이름을 붙여 DOY NAGAR라고 불리고 있었다.


물가를 걷고 있는 우리에게 할아버지 하나가 다가와 사원을 보여 주겠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하얀색 사원은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힌두교 사원으로 40년 매일 시바신과 두 아들에게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사원의 할아버지는 계속 웃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카르마였다. @까만


우리 셋이 들어가서 바닥에 둥그렇게 앉자 사원이 꽉 찼다. 꽃과 향과 사진, 초로 가득 찬 사원에 얼굴 가득 햇빛을 고 앉아 있으니 신이 머물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내 손을 가만히 보더니 좋은 카르마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서 패트의 손을 보더니 문제가 있다고 했다.

“손가락을 붙였을 때 틈이 보이면 안 좋은 거거든.”
트는 그럼 많이 먹고 살이 찌면 되겠다고 대답해서 할아버지를 경악하게 했다.


사원 안에서 할아버지는 기도하는 법과 요가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진짜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보는' 거야.”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처음에는 인중으로 숨이 드나드는 것을, 그 다음에는 정수리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을, 그 다음에는 머리 전체를 보는 거야.”

할아버지는 천천히 팔을 쓸어내렸다.

“털 하나하나를 보고, 세포 하나하나를 보고, 다리를 보고, 다시 온몸을 보는 거야.”


요가를 마친 할아버지는 사원 안쪽의 서랍장에서 젊었을 때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너무나 젊고 잘생기고 빛나는 청년의 모습을 마주하자 괜히 마음이 시렸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기르고 경쾌한 얼굴로 북을 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른 사진을 여러 개 꺼내서 보여주었다. 대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그때의 친구들 사진이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든 할아버지는 말끔한 얼굴의 소년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친구가 열다섯 살에 결혼해서 자신을 떠났다고 말했다. 쓸쓸한 목소리였다.

“그 친구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에 상처를 받았어. 그래서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지.”

할아버지는 그 친구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 사랑이 어떤 모양이건, 어떤 형태건 할아버지의 사랑은 진심이었지만 되돌아오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혼자 사원을 지키면서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수천 번 어루만졌을 사진은 여전히 선명했다. @까만


한국에 돌아온 후에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할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을 동봉했고, 서울에서의 삶에 대해 썼다. 종종 그 사원에 깃들던 햇빛을 생각한다고 썼고, 내 카르마에 맞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된다고 썼다. 여전히 시바신과 그 아들들에게 매일 같이 기도를 드리느냐고 물었고, 호숫가를 날마다 산책하느냐고 물었다.
그 호수에 우리 같은 이방인이 때때로 찾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보자고 쓰고 싶었지만 그저 나중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 편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반송되어 왔다. 나는 인도 친구를 찾아가 편지봉투에 쓰여 있는 문장의 해석을 부탁했다. 그 친구는 편지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수취인 불명’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패트는 아마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친구를 만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정수리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함께 보았던 친구를, 이제는 제3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얼굴을 어루만지고 말을 나누고 같이 고개를 젖혀 가며 웃을 수 있는 거리에서 같이 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된 것이다.     


아즈메의 개 @까만


그리고, 기억은 다시 아즈메,
드디어 아즈메의 무슬림 사원에 다다른다.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사원의, 그 근처의 사진조차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겁에 질렸고,

사진은커녕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서 자꾸만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그렇게 많은 인파를 겪어 본 적이 있었나.

그렇게 끔찍한 혼란을 접한 적이 있었나.

그렇게 수많은 불구의 거지들과 옷깃을 잡아채는 어린 상인들에게 둘러싸여 본 적이 있었나.


사원으로 들어서려는 나를 빗자루로 때리며 돈을 요구하는 남자,

성전 안에서 철창에 갇힌 채 옷감을 거두는 남자,

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성전 벽을 붙잡고 엎드린 여자들.

사원의 안팎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소음에 나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황급히 빠져나온 사원 앞에서 패트는 내게 오토바이에 오르라고 했고, 그 혼란 속을 오토바이로 빠져나오면서 패트는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막아서고, 우리를 끌어내리겠다는 듯이 옷을 잡아당기고, 꽃을 내밀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패트는 더 크게 경적을 울려 댔다. 사람들의 아우성이, 오토바이의 경적소리가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오토바이에 내려서 마구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러나 도망칠 곳이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잡아 삼킬 것만 같았다.     


숙소에 돌아오니 더 견딜 수가 없었다.

혼란을 빠져나왔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기도문이 귀에 울렸고, 계속해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패트의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끊이지를 않았고, 오토바이에서 내렸는데도 멀미가 났다.

이제 곧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야 하고, 그 길들을 혼란과 소음들을 계속해서 통과해 가야 한다는 것이 돌연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침대에 누웠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패트는 이리저리 나를 살피다 메일을 확인하러 인터넷 카페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패트가 나가고 난 후에야 나는 일어나 씻으면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델리로 돌아갈 것이다. 패트의 오토바이를 떠날 것이다. 소음으로부터 도망갈 것이고, 계속해서 펼쳐지는 길을 등지고 마을을 향해 걸을 것이며, 혼자 걷고 혼자 릭샤에 올라 조용한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짐을 풀고 나만의 여행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패트가 돌아왔을 때 나는 가방을 모두 싸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패트는 내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패트는 짓궂은 장난을 칠 때가 많았고, 또 그러려니 싶어서 싫다고 했다.
할 말이 있어.
그런데도 패트는 먼저 눈을 감으라고 했고,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짤랑거리는 소리. 내 발목에 금속성의 무언가와 패트의 손이 닿았다.

눈을 떠 봐.

눈을 떠 보니 내 발목에 은빛의 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델리로 돌아가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장신구가 찰랑거리는 발찌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후에, 우리 이야기를 잘 아는 친구는 헤어짐을 겪은 다음에 '운명'에 대해 말하며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헤어짐은 순간인데, 그 순간을 되돌이키는 무언가가 있고 없고, 라는 거였다.

"그런 게 운명인 거지"


그러니까 떠나려던 나를 붙잡았던 것이 그의 발찌였고, 내 상한 마음을 살핀 그의 마음이었으며, 그것이 곧 카르마라는 거다.

손가락 사이에 단단히 채워져 있는 카르마.

내 발목에 걸려서 찰랑거리는 카르마.

우리의 삶을 기이한 방식으로 붙잡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뒤바꾸어 놓는 힘.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제자리로 돌려놓는 힘.

결국 마음에서 출발하는 카르마.

마음이 만들어내는 운명.


그렇게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 카르마가 인도하는 길을 떠났다.


다시, @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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