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만 Dec 16. 2018

인도는 남자만의 나라야?

만다와, 그리고 비카네

만다와에서 우리는 하벨리에서 머물기로 했다.

만다와는 작은 마을지만 과거 실크로드의 무역상들로 인해 부유했던 곳이었고, 그때의 부유함이 만들어낸 화려한 하벨리와 섬세한 그림, 장식들로 많은 관광객들을 끌고 있는 곳이었다.

하벨리는 ㅁ자의 건물로 내부에 정원을 가지고 있다. 숙소 주인은 우리에게 ‘하벨리’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이란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은 온갖 곳을 쏘다니며 공기란 공기는 다 마실 수 있었던 남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집 안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던 여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햇빛을 보기 힘든 여자들에 대한 배려였지.”     


실크로드가 지났던 만다와 @까만


하벨리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매우 아팠다. 아름다운 하벨리에 누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계속 끙끙 앓았다.

나는 웅크리고 누워서 생각했다.

수백 마리의 낙타를 끌고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인들, 그들의 대단한 활약을 그려놓은 벽화로 가득 찬 하벨리, 그 안에서 무역에 나선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들.

그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무너져버린 사원에서 그 안에 깃든 시간이 보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어쩌면 동일하게, 아직도 선명한 색채로 그려진 그 모든 화려한 시절이 거짓말 같았다. 그 영화가, 그 배려가 처음부터 허상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벨리는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까만


도망치듯 만다와를 떠나와 비카네에 닿았다.

짐을 풀고 이발소와 우체국에 다녀와서, 맥주를 한 잔 하기 위해 커다란 술집을 찾았다. 어둡고 시끄럽고 사람으로 꽉 찬 술집에 들어서서 색색의 새가 그려진 인도의 맥주를 주문해서 마시는데, 패트가 주위를 둘러보라고 했다.

“여기에 여자는 너뿐이야.”

그 술집에는 어림잡아 50명의 중년 남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우리를,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 이미 우리는 맥주 첫 잔을 마시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우리가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서 테이블 사이를 걷고 의자에 앉아 직원을 부르고 주문을 하고 맥주를 받아서 마시는 그 모든 시간 동안 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몹시 불편해졌지만 그 불편함에 지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는 정말 남자의 나라(man's country)네.”

나는 불편한 동의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은 모두 어디에서 술을 마시는 걸까?  

   

@까만


다음날, 패트는 인터넷 카페에 가고 나는 혼자 길을 나선다.

사람들이 내게 빠른 속도로 말을 걸고 가버린다. 그건 때론 반가움을 표하는 영어지만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는 힌디어다.

한 무리의 십 대가 몰려와 마구 지껄이고 낄낄대며 지나가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도 걷고 있는 내게 큰 소리로 말을 한다.

한 늙은 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내 앞에 펄쩍 뛰어들어 나를 놀라게 하는 바람에 난 기절할 듯이 놀라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온 길가의 사람들이 드디어 목적을 이뤘다는 듯이 웃는다.

나는 복잡한 이 도시에 갑자기 출몰한 외계인이고, 비카네 사람들은 그 외계인을 그들의 방식대로 환호하며 반겨준다.

사람들은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포토포토”라면서 자신을 가리킨다. 어서 서두르라는 식으로 손짓을 한다. 사진을 찍고 보여주면 너무나 즐거워하면서 또 다른 친구를 불러서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시끄럽게 서로를 소개해주면서 활짝 웃는다.

한 무리의 악단이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 작은 검은색 휴대폰을 내밀며 작은 이방인 여자와 사진을 찍겠다고 서로 다투며 내 옆에 섰다가 역시 불쑥 나타난 군악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휘두르는 봉에 등을 맞으면서 릭샤에 타면서도 내 사진을 찍는다.

"비카네는 미쳤어!"

내 말에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는다.


비카네 @까만


비카네는 여행객을 끌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도시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온통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한 여느 인도의 도시. 수백 년을 지켜온 그림 없이, 세상과 동떨어진 신비함 없이, 지나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현란한 공연 없이 그저 매일의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인도인들이 사는 곳.   

내게는 비카네가 곧 인도였다.

밤의 펍에는 남자만이 가득하지만 낮의 길에는 사리를 입은 여자가 남자들의 등을 때리는 곳.

"그거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럴 수는 없다"라고도 말할 수 없는 곳.


비카네의 사람들 @까만


내가 돌아오니 패트는 화를 냈다.

“Please, please, please.”

패트는 내게 소리쳤다.

“어디 갈 때는 같이 가자고 해. 여긴 인도야. 다른 사람의 시선에 네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 너는 정말 작아.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쯤 데려가는 건 일도 아니야. 널 데려가서 지하에 가두고 몇 년간 약을 투여하면서 성매매를 시키고 결국 약에 중독된 너는…….”

나는 손을 들어서 패트의 말을 막았다.

“아무 일 없었어. 많은 사람을 만났고,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다 왔어.”

“그래, 알아. 그래도 다음에는…….”

“그럼 네가 인터넷 카페에서 일을 보는 동안 나는 이 방에서 널 계속 기다렸어야 했다는 거야? 너는 혼자 길을 걷는 것이 되고, 나는 왜 안 돼? 너도 돈을 뺏기고 칼에 찔릴 수 있어.”

나는 계속해서 우겼지만 패트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에게 세상은 무섭게 돌변할 때가 많았고, 그런 면에서 서양인 남자인 패트와 여행하는 것이 내게 더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도 맞았다. 그렇지만 그게 화가 났다. 왜 남자에게는 자유와 기회로 주어지는 것들이 여자에게는 공포와 위협으로 다가올까. 그것은 사실 우리 집 앞 골목길에서부터 적용되는, 매일매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왜 이 모든 핸디캡을, 성별만으로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나는 혼자 걸을 거야. 혼자 걸을 수 있고, 혼자 걷고 싶어.”

“그래, 그래. 그렇게 해. 너랑 같이 걷겠다는 게 아냐. 그냥 네 뒤에서 걸을게. 알았지?”

패트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내 걱정이 지나친 걸 알아. 다만 네가 없어지면 난 너를 다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게 다야.”


다음날, 패트는 다시 이야기했다.

"네가 혼자 걸을 수 있도록 해줄게. 그러니까 같이 걷자."

패트의 말에 나는 끄덕거렸다.

우리는 혼자 걸으면서 같이 걸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인도는 남자만의 나라가 아니다. @까만


이전 04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마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