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
새해 전날 밤.
펍스트릿 하늘 가득 얼기설기 걸려 있는 전등들에는 갖가지 색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등 아래로 온갖 피부색의 사람들이 오고 갔고, 다들 손에 음식이나 맥주를 들고 있었다. 가게들은 모두 거리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커다란 앰프를 꺼내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다.
연말이고, 이제 곧 새해고, 얼마 안 있으면 카운트다운을 할 것이고, 그때 같이 5, 4, 3, 2, 1을 외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그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왜 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계획 없이 이곳에 늘어져 있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전에는 그걸 왜 안 했는지.
자칫 잘못하면 책임 못 질 무거운 이야기들이 줄줄 딸려 나올까 봐 조심했던 주제들을 우리는 겁도 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절망들,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할지 몰랐던 시간들, 펍스트릿에 앉아 있는 그 시간까지 나를 쫓아오던 허무의 감정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차례. 그는 남아 있는 맥주를 죽 다 마시더니 손을 들어 한 잔을 더 시켰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호주에서 10년간 일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을 해서 또래의 친구들 중에서 가장 빨리 차를 사고, 작년에는 마당이 딸린 집을 샀다. 역시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였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 집들이 파티에서 모두가 그를 부러워하는 말을 건넸다. 집을 사는 데 도움을 주신 따뜻한 부모님은 그에 대해 안심했고, 1년간을 사귀어 온 연인과의 관계도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었고, 왁자지껄한 파티에 초대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집을 고쳐 드리고 있었고, 형과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타 넘고 있었다. 악기를 배우고 있었고, 승마를 배우고 있었다. 부족한 것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런데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자꾸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삶의 전부일까. 삶을 통해 이루어야 할 것, 삶의 가치, 이를테면 삶의 답,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할수록 아득해지기만 했다.
내전 중인 나라에 찾아가는 건 어떨까. 호랑이가 나오는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면 어떨까. 이런 식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그러다 그는 집을 정리했고, 그 돈을 모두 챙겨서 떠나 왔다. 캄보디아의 무료 학교의 책상을 만드는 일과 인도의 장애인 병원을 고치는 일을 자원했다. 그리고는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아니, 사실 계획이 없었다.
가족들에게 삶의 답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던 부모님은 그를 말리지 않았지만 공항에서 많이 우셨다.
“Looking for something to do with my life.”
나는 그에게 답을 찾으면 꼭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카운트다운을 외치기 전에 우리는 거리의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5, 4, 3, 2, 1.
수많은 환호성과 키스들.
“Happy new year!”
우리는 프놈펜에서 다시 만났다. 그가 정글에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일정과 내가 말레이시아로 넘어가기 전에 프놈펜에서 또다시 계획 없이 몇 주를 보내는 일정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일이 흔치 않았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꽤 친하게 느꼈다. 나는 내가 프놈펜에서 매일 들르던 시장과 광장을 소개해 줬고, 그는 현지인에게 정보를 얻었다며 기가 막히게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말레이시아에 가 본 적 있느냐, 거긴 어떻냐,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출국장에 들어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며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인도에 같이 갈래?”
에스컬레이터 아래에서 그가 물었다. 우리가 만난 첫날, 외곽의 사원을 보러 가겠느냐고 물었을 때처럼.
“그래.”
나는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대답했다. 우리가 만난 첫날, 외곽의 사원을 보러 가겠느냐고 물었던 그에게 대답했을 때처럼.
“그럼 인도에서 봐.”
그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래, 곧 봐.”
나도 다시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려 출국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