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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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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Aug 11. 2022

미싱 초보자는 더운 날에 미싱기를 켜면 안 된다.

  지난번 벼룩시장에서 남편의 회색 바지를 하나 샀었다. 판매하는 아저씨는 메이커라며 싸게 주는 거라고 해서 샀었는데 사기였다. 회색 바지를 빨면 빨수록 바지 안의 보풀이 다 빠지면서 다른 옷에 다 묻어 뒷수습을 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남편의 검은 바지가 제일 피해를 입었다. 바지를 빨면 꼭 신문지를 넣고 빤 것처럼 되어 검은색 옷들은 1유로 마트에서 급한 대로 보풀 제거를 하는 기구를 사서 정말 열심히 보풀을 제거했었다.

  그러나 남편의 바지는 더 이상 수습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도저히 이 바지는 회사에는 못 입고 다닐 거 같다며 편하게 입게 반바지로 잘라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알았다고 대답을 했었다. 그리고 눈에 잘 보이도록 바지를 두고 반바지로 잘라야지 하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핑계를 대자면 여름 방학이라 아이들과 같이 공부도 해야 하고  마당에서 물총놀이도 재밌게 해줘야 하고 배드민턴도 같이 쳐줘야 하고 간식도 만들어먹어야 하는 등 나도 집에서 할 일이 많았다.

  더구나 나는 12년 만에 미싱기를 켠 미싱 초보자이기 때문에 미싱을 시작하려면 시간과 아주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바지를 지나칠 수 없었다. 얼른 미싱기를 켜서 반바지로 만들어 바지를 옷 서랍에 넣어놔야만 할 거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미싱기를 킬 예정이니 마당에 나가서 줄넘기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줄넘기 할당량을 주고 미싱기의 전원을 켰다.

  지난번 남편의 남색 바지의 성공적인 미싱기 데뷔전을 치른 나는 남편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지난번 남편의 남색 바지의 밑단을 안 자르고 했다가 남편의 요청으로 밑단을 잘라 다시 박아줬다. 얼마나 촘촘히 박았는지 세탁기에 넣고 빨아도 밑단이 풀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할 때마다 조금 긴장된다. 너무 오랜만에 미싱기를 켰으니 말이다. 미싱기 바늘도 하나밖에 없는 상태라 바늘도 소중히 다뤄줘야 한다.

  우선 기존의 남편의 반바지를 하나 갖고 와서 어느 정도 잘라야 할지를 체크했다. 그리고 재단 가위로 시원하게 잘랐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미싱기도 더워서 그런지 지난번처럼 일자 박기가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의 실패를 하고 나서 보니 미싱기의 땀 길이가 잘못 체크가 되어 있었다. 이런.. 덕분에 얼마 남지 않은 검은색 실을 다 쓰게 되었다. 다행히 그나마 바지 색깔과 비슷한 회색 실아 남아 있었다.

  나는 독일에서 미싱을 할 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을 사지 않았다. 실들은 12년 전 그대로이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등 알록달록한 색깔들은 안 쓰고 검은색, 흰색 회색만 거의 사용했었다.

  나는 검은색과 회색은 비슷하니 박아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검은색에 회색은 티가 났다. 나는 몇 번 일자 박기의 실패를 거듭하며 나한테 사기 친 아저씨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분노의 미싱을 박고 있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는지 두 딸이 들어오더니 나에게 엄마 잘 돼가고 있냐며 정말 잘 박았다며 칭찬을 해줬다. 늘 고마운 딸들이다.

  남편이 편하게 입을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탁기에 넣고 빨 때 밑단이 빠지면 안 되기에 아주 촘촘히 박았다. 겨우 반바지가 완성되었다. 내가 남편의 반바지를 입고 뛰어보고 해도 밑단은 빠지지 않고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


  자전거처럼 손에 익혀지려면 당분간 미싱기를 자주 작동시켜야 할 거 같다. 우선 내일 검은색 실부터 구입을 하러 1유로 마트에 가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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