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의 사랑방 = 커피 자판기
독일어 학원 복도의 커피 자판기 앞은 전 세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학원의 사랑방과 같다. 어떤 날은 동전을 많이 갖고 온 친구가 커피를 사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동안 얻어먹은 친구가 사주기도 한다. 나도 아이들이 안 쓰는 동전지갑에 동전을 두둑하게 넣고 다닌다.
나는 이제 독일어 학원에서 단짝 친구들이 생겨 쉬는 시간에 같이 화장실을 가고 같이 커피자판기 앞에서 줄을 서서 커피를 뽑고 커피를 마시며 교실로 들어온다. 나는 이젠 경직되었던 과거와 달리 친구들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여유가 생겼다. 그렇다고 내가 독일어가 유창한 건 아니지만 알아듣고 말하는 게 조금씩 재밌어지고 있는 거 같다.
나이 40에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지난주 여느 때와 같이 나는 독일어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나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려고 친구들과 자판기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우리 학원의 분위기 메이커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가 커피를 뽑고 나에게 오더니 나보고 마루코를 닮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혹시 너 일본 만화 마루코를 말하는 거냐라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은 마루코가 누구냐고 해서 내가 핸드폰에서 검색을 해서 보여주니 다들 나보고 닮았단다. 지난번 내가 머리를 잘라서 단발이라 더 닮았다고 하는가 싶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너는 항상 웃고 귀엽다고 했다. 내가 아직 독일어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보니 간단하게 친구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 기침하는 친구들한테 감기 사탕을 하나씩 나눠주다 보니 그런 이미지를 얻었나 보다.
마루코는 '마루코는 아홉 살'이란 일본 만화의 주인공인데 귀엽고 엉뚱한 캐릭터이다. 그 이후 내 별명은 마루코가 되었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다 나보고 닮았단다. 나이 40에 독일에 와서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 귀여운 이미지를 얻다니 내심 기분은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 별명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있었던 거 같다. 친한 친구들끼리 별명을 지어 불렀던 거 같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없었던 별명이 독일에 와서 생기니 내심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살면서 언제 이란, 이라크, 에티오피아, 튀니지, 우크라이나, 인도 등 전 세계에서 독일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나에게 독일어 학원은 독일 생활의 엄청난 활력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드는 지금 외국인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