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족과 함께 독일에 온 지 25일이 지나고 있다. 처음에 독일에 올 때 나는 한인마트를 안 가도 독일식으로 음식을 잘해 먹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독일에 오긴 전 감자요리를 다양하게 연습도 했었다. 독일은 감자가 주식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를 가면 그 나라에 맞춰 살아야지 하며 독일빵만 먹으며 감자 요리를 하며 먹고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39년을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당연히 밥이 익숙하고 김치나 멸치, 김 등이 맛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한식이 편한 게 당연한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하는데 남편이 라면을 사러 한인마트에 가보자고 했다. 운전을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독일 집을 구할 때 마트가 많고 지하철 탑승이 용이한 곳으로 집을 얻었다. 여기선 운전을 못하면 마트를 나가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는 한인마트도 있고 독일 마트도 3군데나 있고 역 쪽으로 나가면 더 큰 마트들이 있다. 애들 학용품을 지난번에 살 때 비싸게 샀는데 나는 우리 동네에서 더 멀리 나가보니 1유로 대형 마트를 찾았고 거기서 싼 학용품들을 보며 탄식을 했다. 스스로 '그래 4년 동안 쓸 학용품을 샀다.'는 내 나름의 위안을 하고 다른 학용품 가격을 안 보려고 한다. 보면 가슴만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름 이제 싼 마트도 찾고 적응해가고 있으나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건 바로 언어이다. 하나씩 검색해야 하고 할 말을 외우고 가도 사실 입 밖으로 잘 안 나온다. 그래서 세상에 쉬운 게 없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살고 있다. 독일 마트를 갈 때는 이방인의 느낌을 매번 받고 있지만 한인마트를 토요일날 방문해보고 깜짝 놀랐다. 들어가자마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이 이 동네에 많았나 싶기도 하고 너무나 익숙한 라면, 보리차, 김치 등 없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낯익게 들려오는 우리나라 말들이 뭐랄까 굉장히 고맙고 친절하게 느껴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다. 냉동이었지만 어묵도 있었고 김밥김도 많았다. 그래 이 정도 가격이면 아이들을 위해 사서 김밥은 싸줄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나는 원하는 라면을 사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거기 한인이 하는 치과가 오픈했다는 안내, 양념치킨을 파는 곳 등의 안내들이 반가웠다. 해석할 필요도 없고 보면 바로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글씨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물론 내가 독일어를 잘하고 영어를 잘했으면 어떤 안내지를 읽든 바로 파악을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아직은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외국생활에서 한인마트는 나에게 한국에 대한 익숙함 그리고 반가움의 존재였다. 왜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 나라 음식점에 가서 사 먹고 물건을 구입하는지 너무나 잘 알 거 같다. 그건 본인이 살던 나라의 익숙함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물어보지 않아도 아는 맛 그 익숙함이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거 같다.
우리 가족은 그날 사온 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외국에서 맛보는 한국 라면은 한국에서 먹던 맛보다 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