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지연구소 프로젝트 스토리 - 전주솟대디퓨저 #01
* 이 글은 2020년 10월 31일에 발간한 [00. 전주솟대디퓨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10년의 다짐 이후의 실천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다짐 이후에는 실천이 필요하다.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문화유산을 전공한 약 10년의 기간 동안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조금 더 공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가 조금 더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내가 해볼 수 없을까?"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하얀 책상을 뚫고 나왔다.
2019년 4월, 이러한 고민을 담은 썰지연구소의 첫 프로젝트. '전주솟대디퓨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글은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바램을 솟대가 물고 찾아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하였다.
2018년 12원 21일. 나의 이삿날이다. 첫 전주살이였던 동서학동을 떠나 중앙동으로 옮겼다.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전환하겠다는 나름의 선언이었다. 이삿짐은 전 직장동료 분들이 도와주었다.
동서학동과 중앙동은 차로 10분 남짓 거리이다. 수진 쌤 차를 타고 남부시장을 관통하는 골목길을 지나 나의 새 터전, 성월오피스텔에 도착하였다.
중앙동은 전주의 중앙에 위치한다. 남부시장, 전주 한옥마을, 객사, 웨딩의거리 등 명소들에 둘러있다. 과거 전주는 전라감영 중심으로 사대문이 위치했다. 현재는 풍남문만 남아있으며, 2020년에 전라감영을 복원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전라감영' 기사를 검색해 보니 8월 9일자로 전라북도문화원연합회에서 [사진으로 보는 전라감영 복원 기록] 발간 기사를 확인했다. 3년여에 걸친 복원 과정을 편집한 다큐멘터리 기록집이란다.)
긴 역사만큼이나 중앙동은 원도심의 향내가 강하게 난다. 지금 중앙동에 살 때 가장 좋았던 순간을 복기해보자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과 오래된 콘크리트 건축물 사이를 산책했던 나날들이다.
솟대장이 김종오 옹을 만난 것은 2019년 2월 즈음이다. 풍남문을 걷고 있는데 수많은 솟대에 둘러싸여 솟대를 깎고 계신 것이 아닌가. 요즘 시대에 자리를 깔고 앉아 직접 자신이 팔 것을 만들고 계시다니, 옛 시전 장인의 모습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하셨는지, 벌이는 괜찮으신지 등등.
솟대로 무언가를 고안해야겠다는 생각은 3월 중순부터 시작하였다. 3월 1일, 문화유산 활용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해커톤에 참여한 것이다. 생전 경영이랄지 창업이랄지 더욱이 해커톤이 전혀 생소한 나에게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브랜딩하여 대중은 물론 장인과 기획자가 상생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들에게 이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졌을까. 나는 1차에서 탈락했다. 집에 도착한 직후 내 신념을 증명해야겠다고 결심하엿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고대하고 고대했던 유렵여행을 다녀온 터라 모은 돈을 다 써버린 것이다. 공예품을 살 넉넉한 돈도 없었고, 오직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나의 이론을 말하며 공예품을 얻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찰나에 중앙동을 산책하며 뵙던 솟대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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