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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Apr 15. 2024

빈방에 두 달 동안 켜져 있는 컴퓨터 모니터


2주가 지난 뒤에 구청 직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주인이 보증금을 내어 주어야 한다고 애타고 찾고 있다고 한다. 월세 보증금이 얼마나 되겠는가. 짐을 빼라는 얘기겠지.


통화가 된 김에 복지과 직원에게 사망신고에 대해 물어보았다. 복지과 직원은 구청에서 장례를 대행하면 사망신고를 따로 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게 어딨 어요? 거기 구청이잖아요?"


"그게 저희 업무가 아니라서……. 사망신고를 꼭 하셔야 하나요?"


공무원들은 자신의 담당 업무만 하면 그만인지 사망신고를 하고 싶다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이 갸웃했다. 나는 그런 직원의 생각에 더 갸웃했다.


"그럼 죽은 사람 서류를 그냥 놔 두나요?"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난 아이의 장례를 위해서 떠난 사람의 서류는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복지과 직원은 병원에서 사망확인서를 떼어 주는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했다. 그리고 집주인과 오피스텔 상가 부동산에서 만나기로 한 날, 앞서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복지과 직원을 먼저 만났다. 그는 사망확인서를 떼어 내게 건네주었다. 그 서류조차 나는 남이라서 함부로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부동산에서 집주인을 만났다. 이번에도 친구가 함께 가 주었다. 집주인과 공인중개사, 오피스텔 경비아저씨가 함께 모여 앉았다. 최근의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경비 아저씨였다. 가끔씩 경비실 앞으로 와서 가슴이 답답하고 하며,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며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비 아저씨는


“참 예의 바른 사람이었는데.”


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친다. 집주인도 월세도 꼬박꼬박 내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에서 그러지(죽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까지 한다.      


그에 대한 이런저런, 쓸데없는, 허무한 얘기를 하다가 그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문 사이로 수많은 광고 전단지가 꽂혀 있었다. 문고리를 돌리니 전단지가 우두두 떨어지며 문이 열렸다. 책상 위에 컴퓨터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책상 위엔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음료수병들이 가득했고, 책상 구석에 있는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컴퓨터 끌 생각도 안 했단 말이야.’

그런 일에 무심한 그의 성격이 새삼 떠올랐다. 하물며 죽으러 집 밖으로 나갔는데, 그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었을까.


벽 한쪽엔 백 개쯤, 되어 보이는 많은 모자가 걸려 있었고, 가전제품들은 모두 신제품이라 할 만한 것들이다. 최근에 주문한 책은 개봉만 한 채로 그대로 박스 안에 담겨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책 박스가 려준다.


           



좀 전 부동산에 앉아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사람들이 가전제품을 보며 탐을 냈다. 내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새 가전제품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집 바로 옆이 관리실이었는데, 관리소장이라는 사람은 딱 봐도 고성능일 것 같은 복사기를 자꾸만 쳐다봤다.


복사기와 정수기에 남은 렌털 기간이 있나 확인했다. 복사기는 그의 소유라고 하고 정수기는 렌털 의무기간이 끝난 상태여서 해지를 요청했더니 바로 가져갔다. 컴퓨터 옆 모뎀에 있는 통신사를 통해 통신사로 전화를 걸었다. 통신사도 다행히 의무 약정기간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이용자가 사망했다고 하며 해지를 요청했음에도 안내 직원은 앵무새처럼 나에게 인터넷 망을 승계하라고 몇 차례나 권했다.


“사람이 죽었다고요!”


안내 직원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듯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숙연해졌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고객 갑질을 보호하기 위한 누군가의 가족 등등을 말하며 폭언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이 문제의 시작은

고객은 왕이라고 하며, 사랑한다고도 하며, 고객을 호구 삼으려는 기업의 실적 쌓기 직원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너무 많은 호객행위가 고객님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앞선 사건이다.

물론 그 고객이 엉뚱한 콜센터에 화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까지는 당해줘도 되고 여기서부터 화를 내야 한다는 걸 선을 그어 인식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일일 텐데 말이다.           





그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올 수는 없다. 물건들을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날 것이다. 경비 아저씨께 얼마간의 사례비를 주고 물건들을 치워달라고 했다.

집을 비워준다는데 사인을 해 주었다. 집주인은 밀린 월세를 제한 보증금을 내어 주며, 나에게 복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위로인지, 칭찬인지 가늠이 안 되는 말이다. 집주인이라고 해도 세입자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내가 나타나 주어 상황을 종결지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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